[[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자성군 출신 인물]][[분류:1886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길수}}}'''[br]'''金吉洙'''}}}}}}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6년]] || ||[[평안북도]] [[자성군]] 자하면 연풍리 || ||<|2><color=#fff>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김길수는 1886년생이며 평안북도 자성군 자하면 연풍리 출신이다. 그는 중국 요령성 집안현에서 대한독립단원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던 1919년 12월 7일 일제 밀정 최경태(崔京泰)를 집안현 이마구(二馬溝) 박기병(朴基炳)의 집에서 체포해 삼도구(三道溝)로 통하는 산 정상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6월 1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김길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