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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1차 지명[편집]
3. 2차 지명[편집]
3.1. 지명방식[편집]
1라운드부터 12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2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신생팀 SK 와이번스가 참여하면서 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에서는 지난 3시즌의 성적 역순대로, 짝수 라운드에서는 지난 3시즌의 성적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신생팀 SK 와이번스가 참여하면서 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에서는 지난 3시즌의 성적 역순대로, 짝수 라운드에서는 지난 3시즌의 성적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편집]
-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 볼드표시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 볼드표시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라운드 | ||||||||
1 | 박용진 (신일고, 투수) | |||||||
조형식 (속초상고, 투수) | ||||||||
2 | 유영민 (광주일고, 투수) | 신경석 (전주고, 투수) | 김태구 (마산고, 투수) | 여승현 (한서고, 투수) | ||||
3 | 황명성 (청원정보고, 투수) ※ | 서창호 (부산고-고려대, 내야수) | 심제훈 (부산고-동아대, 외야수) | 최성현 (중앙고, 투수) | 김용영 (북일고, 투수) ※@ | 김명규 (원주고, 내야수) | ||
4 | 박정근 (경북고, 투수) ※ | 이윤학 (신정고, 투수) | 이대현 (청원정보고, 포수) | 원정빈 (공주고, 외야수) ※ | ||||
5 | 오승준 (신일고, 투수) | 김제빈 (중앙고, 투수) | 김정환 (중앙고, 포수) ※ | 배광진 (동산고, 내야수) ※@ | 이철기 (전주고, 투수) | 정한상 (전주고, 외야수) ※ | ||
6 | 이화준 (경동고, 외야수) ※ | 양성모 (마산고-제주한라대, 투수) | 임창섭 (배재고, 내야수) ※ | |||||
7 | 최대곤 (전주고, 포수) ※ | 권소용 (휘문고, 내야수) ※ | 이범석 (공주고, 투수) ※@ | 육현수 (성인고, 투수) ※ | 고윤성 (경남고, 외야수) ※ | |||
8 | 김장준 (서울고, 투수) | 문왕식 (효천고, 외야수) | 한정석 (배명고, 투수) ※ | 임성민 (마산상고, 외야수) | 김민석 (선린정보고, 외야수) ※ | 손제민 (경남상고, 외야수) ※ | 한결 (광주상고, 내야수) ※@ | 박재민 (청주기공, 내야수) |
9 | 김현우 (경동고, 외야수) ※ | 김경태 (신일고, 외야수) | 김수환 (청원정보산업고-경희대, 투수) | 최홍진 (신일고, 투수) ※ | 이면우 (휘문고, 외야수) ※ | |||
10 | 윤영보 (동산고, 투수) | 황준영 (경남고, 내야수) | 구제주 (영흥고, 투수) ※ | 김광우 (경남상고, 내야수) ※ | 김동범 (마산상고, 내야수) ※@ | |||
11 | 없음[15] | 패스 | 박정규 (한서고, 투수) | 김상래 (청원정보고, 외야수) ※ | 이수 (경기고, 외야수) ※ | 김동기 (인천고, 외야수) ※ | 강유삼 (세광고, 투수) | |
12 | 없음 | 패스 | 김동혁 (군산상고, 내야수) ※ | 안재영 (경동고, 내야수) ※ | 패스 | 김선명 (광주상고, 외야수) ※@ |
4. 드래프트 평가[편집]
- SK 와이번스: 이대호 거르고 김희걸(개명해서 지금은 김건한), 조형식, 김동건. 김희걸은 빠른 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평가받았고, 조형식은 속초상고 동기 조영훈과 투타를 이끌어 창단한지 얼마 안 되는 팀의 대통령배 8강 진출과 세계청소년대표팀 우승에 기여했고, 김동건은 공수주 모두 뛰어난 유격수로 평가받았다. 이대호를 놓친 건 아쉽지만, 그래도 1차 지명자 정상호, 나머지 2차 지명에서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 등 향후 SK 왕조의 주축 멤버가 될 선수들을 많이 뽑았기 때문에 아주 손해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대호를 거르고 뽑은 2차 1순위 지명자들이 제대로 활약해 주지 못했다는 것. 그나마 투수 김희걸을 지명해 2003년~2004년 2년간 전천후 투수로 잘 기용하다가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하여 KIA에서 박재홍을 데려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 현대 유니콘스: 두 선수가 터지긴 했는데, 희한하게도 지명 당시 포지션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한 명은 투수로 입단했다가 현역 복무를 마치고 타자로 전향한 후 터졌고, 또 한 명은 고교 졸업 당시 유격수였는데 지명받은 후 입학한 대학교에서 투수로 전향,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선수단이 인계된 넥센 히어로즈에 돌아와 주전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굳혔다. 2013년에는 부처님도 차지하지 못한 골든 글러브도 차지한다. 1차 지명으로 지명한 인천고 설의석은 얼마 안 있어 방출되었고, 2차 12순위로 지명한 어떤 발 빠른 외야수는 현대가 홍익대학교로 보냈다가 약한 타격 때문에 지명권을 포기했다. 졸업 후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삼성 라이온즈: 역시 흉작.(...) 삼성 구단 역사상 최고액 계약금 5억 3천만 원을 안긴 1차 지명자 이정호는 고교 시절부터 있었던 팔꿈치 부상과 그에 따른 관리 실패로 통산 1승에 그치는 등 1군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고 2004년 FA 박진만의 보상선수로 현대로 가버렸다.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1루수 조영훈은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다가 KIA를 거쳐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한 NC에 자리잡았으며,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박성훈은 조원수박차
잉여라인을 이루다 결국 장원삼을 상대로 넥센에 트레이드되었다. 그 외에는 김덕윤 정도가 간간이 1군에서 모습을 비쳤지만 김덕윤도 2006년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됐고 2년 후 두산에서 방출되어 은퇴했다.
5. 이모저모[편집]
- 2000년 초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신생구단 전력 평준화 지원 차원에서 이 해와 이듬해인 2002년 신인지명에 한해 1라운드에서 3명을 먼저 지명하는 혜택을 누리게 됐다.
- 지명된 대졸 이상 선수가 겨우 5명뿐으로, 역대 신인지명 중 고졸선수에 대한 선호가 제일 높았다.
- 지명한 선수 전원을 입단시킨 SK와 달리 삼성은 1차 지명자 이정호와 2차 1라운드 지명자 김덕윤 둘을 제외하고 모두 대학교에 보냈다.
- 두산에 2차 10라운드로 지명된 채태인은 이미 보스턴 레드삭스와 입단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두산이 지명한 것은 만약 미국에서 실패하거든 자기네 팀으로 오라는 뜻. 그러나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채태인은 삼성에 입단했다.
- 지명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선수 51명 중 졸업 후 제대로 입단한 선수는 16명에 불과했다. 한화 지명자였던 최준원은 SK에 다시 지명되었으며
윤승균등 5명은 신고선수로 겨우 프로에 발을 들였다. 나머지는 대학에서 중도하차했거나 지명권이 풀렸다.
- 추신수가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부산고 동기 정근우가 지명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은 작은 체구때문에 스카우터들이 관심을 잘 주지 않아서다. 한화 2차 1픽 김백만이 부산고 출신인걸 보면... 결국 정근우는 고려대로 진학했고 훗날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다.
[1] 지명 거부 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2]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3] 2014년 시즌 중에 김건한으로 개명.[4] 2013년 김태영으로 개명.[5] 현재는 장민석[6] 현재는 이우민[7] 현재는 박준서[8] 현재는 박종윤[9] 2004년 병역비리 사건 때 불구속 입건된 뒤 지명권이 풀렸다가 공익요원 복무를 마친 후 신고선수로 입단.[10] 방출 이후 기아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가 또 방출. 결국 일본 독립 리그로 건너갔다.[11] 중앙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이후 신고선수로 입단[12] 동아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이후 신고선수 입단.[13]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1년 만에 방출.[14] 단국대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뒤 1년 쉬고 송호대에 입학.[15] 각 팀마다 12명을 지명할 수 있기에 SK의 11, 12라운드 지명은 없었다.[16] 동국대 진학 후 지명권 포기, 이후 2005년 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SK에 지명.[17] 2010년 공익근무 복무 후 오재필로 개명.[18] 다만 김태균의 성적도 좋았지만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게 흠이었고 같은 해에 데뷔해 거의 전경기 출장했던 박한이를 밀어내고 수상한지라 논란이 좀 있었다.[19] 대졸 후 2005년에 지명[20] 유급으로 2002년에 지명[21] 대졸 후 2005년에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