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99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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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 존 웨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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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월드 시리즈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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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짐 레이리츠의 홈런 장면
1. 개요
1996 MLB WORLD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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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20일에서 26일까지 6차전으로 진행된 뉴욕 양키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월드 시리즈 경기. '악의 제국'의 부활의 신호탄이자 명장 조 토레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경기였으며 명가의 재건이 시작되는 서곡이었던 경기로 유명한 경기라는 점에서 각별했던 대회로 볼 수 있다.
2. 양 팀 상황
2.1. 1996년 뉴욕 양키스
이미 양키스의 재건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94년 파업으로 시즌이 조기종료 되기전까지 양키스는 70승 43패의 성적으로 당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6경기 반차로 앞서 있었다. 벅 쇼월터 감독이 이끄는 양키스는 사실 그 해에 파업만 없었더라면 1980년 이후의 100승에 거의 근접해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1994년도 시즌이 파업으로 조기종영되고 1995년의 '시애틀 대참사'를 당하면서 양키스 팬들은 불안에 떨었다. 더구나 1995년 시즌을 끝으로 돈 매팅리가 은퇴하고, 감독이었던 벅 쇼월터도 사임하면서 다시금 양키스는 예전의 그 암흑시대로 돌아가는가 싶었다. 이 와중에 96년 시즌 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감독을 역임했던 조 토레감독이 뉴욕 양키스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코칭 스태프도 일대 변화를 겪어 벤치 코치에 돈 짐머를, 투수 코치로 멜 스타더마이어 코치를 임명해 코칭 스태프를 쇄신했다. 이와 더불어 선수단에도 변화를 주어 (현 양키스 감독)조 지라디를 포수로, 슬러거로 이름 날린 세실 필더[1]와 찰리 헤이스와 같은 이름은 별로 없어도 각 포지션에서 실력있는 선수들을 프리에이전트로 영입해 내실을 다졌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92승 70패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아메리칸 챔피언전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제압하고 1981년 이후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맛본다.
2.2. 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두말하면 잔소리인 팀이었다. 톰 글래빈[2],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 그리고 제구력의 달인 그렉 매덕스[3]가 버티는 선발진은 난공불락 그 자체였다. 여기에 프레드 멕그리프, 치퍼 존스, 그리고 하비 로페즈가 포진된 방망이는 가히 내셔널리그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았다. 공수의 완벽함이 이보다 더 잘된 팀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팀이었다. 경험도 많았다. 1996년 월드시리즈는 애틀란타에게 90년대 들어서만 이미 4번째 월드시리즈[4]였다. 이미 그들의 가공할만한 파괴력은 전년도 1995년 월드 시리즈에서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불방망이를 자랑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시리즈 내내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게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낸 저력으로 증명해보였다. 브레이브스는 이 기세를 몰아 이번 시즌에도 우승, 명실상부한 명문구단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비쳤고 NLCS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제압하고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장정을 나섰다.
3. 진행
3.1. 1차전
10월 20일, 양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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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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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차전
10월 21일, 양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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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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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에서도 브레이브스는 그렉 매덕스를 등판시켜 노장 지미 키가 등판한 양키스를 7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4대 0으로 승리, 시리즈 스코어 2대 0의 기록으로 애틀랜타로 향한다. 애틀랜타의 무시무시한 투수진을 감안하면, 양키스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고 양키스는 제발 4전 전패만 안 당하는 것이 목표인 것 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3.3. 3차전, 반전의 서막
10월 23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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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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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차전, 시리즈의 전환점
10월 23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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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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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는 케니 로저스를, 브레이브스는 대니 네이글을 등판시켰다. 이 경기에서 애틀랜타는 2회에 4점, 3회에 1점, 5회에 1점을 추가 6대 0의 점수로 앞서 나가면서 이렇게 양키스를 벼랑끝으로 몰아붙이는 듯 했다. 그러나 양키스는 6회초에 세실 필더의 2타점 2루타와 찰리 헤이스의 1타점 적시타로 3점을 올려 6대 3으로 따라붙었다가 8회초에 1사 1,3루의 상황에서 대타로 나온 짐 레이리츠가 애틀랜타의 마무리 마크 월러의 2 스트라이크 2볼 상황에서 던진 슬라이더를 통타, 좌월 3점 동점포를 쏘아올려 경기를 원점으로 뒤집어 버렸다[5][6]. 이후 양키스는 10회 2사 만루의 상황에서 대타로 들어간 웨이드 보그스가 밀어내기로 7대 6을 만든뒤 찰리 헤이스가 친 플라이 타구를 라이언 클레스코가 실책함으로 8대 6을 만들어 추격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존 웨틀렌드[7]가 경기를 잘 마무리하며 8대 6의 승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3.5. 5차전, 이걸 양키스가
10월 23일,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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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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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6차전
10월 26일, 양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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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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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분위기는 양키스에게 확연히 기울어져있었고, 애틀란타는 마지막까지 거세게 저항했지만 끝끝내 3-2로 패하면서 양키스가 기나긴 1980년대의 암흑기를 지나 1978년 이후 무려 18년만에 우승을 차지한다.
양키스의 마무리 존 웨틀랜드는 양키스의 4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거두면서 시리즈 MVP를 차지한다. 그런데 같은 팀의 후배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이후 양키즈의 우승에서 대부분의 마무리를 담당하면서 웨틀랜드는 잊혀지고 말았다.
4. 기타등등
- 양키스는 이 해 월드시리즈의 3차전을 시작으로 2000년 월드 시리즈 3차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14연승을 시작하게 된다. [13] 그리고 이해에 우승은 양키스의 23번째 우승이었고 프로야구로서는 최다우승이었는데 당시 1994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8번째 우승한 것으로 그나마 근접하다.
-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교타자 웨이드 보그스는 이 해 양키스 소속으로 드디어 감격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월드 시리즈 당시 뉴욕 메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한 이후 더그아웃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도 감회가 새로웠을 듯. 근데 너무 기뻐서 경기 종료 후 경관이 타고온 말을 뺏어 타기도 했다. 덕분에 보스턴 구단측과 팬의 원성을 사 보스턴에서 활약한 기간이 더 오래되었음에도 영구결번도 못받았다가, 2015년 말에 가서야 비로소 영구결번이 결정되었다.
- 폭스 방송사가 처음으로 중계한 경기이며 이 경기의 중계를 맡았던 조 벅은 월드시리즈 사상 2번째 최연소 중계자로 기록을 올린다 (당시 27세). 참고로 최연소 기록은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전담 중계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빈 스컬리 옹인데 첫 경기 중계가 1953년도 월드 시리즈 중계로 당시 불과 25세의 젊은 나이였다.
- 출전팀의 모자와 유니폼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패치가 부착된 시리즈였다. 이후 매년마다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팀들의 모자나 유니폼엔 해당 년도의 월드 시리즈 로고가 부착된다.
- 2차전마저 패해 궁지에 몰렸던 양키스는 당시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조 토레 감독과 호세 카데날 1루 코치를 불러세워 닥달을 하자 "애틀랜타에서의 3경기 모두를 승리로 이끌어 6차전을 기필코 뉴욕으로 가져오겠다."라는 조 토레 감독의 호언에 "뉴욕(홈경기)에서도 발렸는데 어떻게 애틀란타(원정경기)에서 이길거임?"하고 비아냥댔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4차전에서 양키스가 6점차의 점수를 따라잡은 경우는 1956년 양키스와 다저스간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다저스가 6점차의 열세를 따라잡은 이후의 최다 점수차의 극복이다. 아울러 4차전 경기소요시간 4시간 17분은 당시 월드 시리즈 최장 경기시간이었다. 이후에 2005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5시간 41분으로 경신되었으며, 현재는 2018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무려 18이닝동안 진행된 7시간 20분이 최장 기록이다.
- 양키스의 불펜투수였던 그램 로이드(Graeme Lloyd)는 월드시리즈에 최초로 출전한 호주출신 선수로 기록되었는데 한 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이며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 6차전 경기시작 전,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은 개인적인 희소식을 전달받았는데 바로 둘째 형이었던 프랭크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미 큰형을 심장마비로 잃었던 슬픔이 있었는지라 이 소식은 조 토레 감독에게는 한시름 놓는 경기였다.
5. 우승반지
파일:1996 New York Yankees World Series Championship.jpg
뉴욕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뉴욕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 프린스 필더의 아버지 맞다.[2] 2014년 1월 8일 (미국 현지 날짜) 명예의 전당 입성.[3] 톰 글래빈과 동시에 명예의 전당 입성.[4] 1991, 1992, 1995, 1996. 그리고 1999에도 진출한다. 그런데 이 다섯번중 한번만 우승한게 엄청난 함정.[5] 참고로 당시 레이리츠는 마크 월러의 6구째를 잡아당겨 홈런을 만들었는데 의문되는 것이 월러의 1구째와 4구째를 제외한 4개의 공이 슬라이더였다. 현장에서 해설을 맡았던 팀 맥카버도 월러의 슬라이더 비중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을 정도. 후일담에서 레이리츠 역시 만약 패스트볼로 승부를 걸었더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는데 실제로 레이리츠는 패스트볼은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6] 아울러 이 8회초는 브레이브스에겐 뼈아픈 이닝이었는데 레이리츠의 홈런 전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팀 레인을 볼넷으로 출루시킨 후, 스트로베리가 좌전 안타로 무사 1,2루가 된 상황에서 당시 12타수 1안타의 저조한 기록을 올리던 마리아노 던칸이 타석에 들어섰는데 던칸의 타구가 유격수 앞 땅볼이 된 상황에서 교체로 들어온 라파엘 벨리아드가 제대로 포구하지 못해 병살에 실패 1루주자였던 스트로베리만 아웃시킨 것. 이게 뼈아팠던 이유는 유격수였던 벨리아드가 수비를 위해 교체해 들어왔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벨리아드가 제대로 처리해 병살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면 레이리츠의 홈런이 있었더라도 6대 5, 한 점차 리드는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7] 이 때는 아직 커터의 달인이 마무리가 아니라 셋업을 볼 때 였다. 그래도 셋업으로도 잘했다. 셋업으로 사이영 상 후보 3위에 오를 정도였으니.[8] 레퍼런스 찾아본 결과 양키스가 더 높은 승률이었는데도 1~2차전을 원정에서 출발했다.[9] 워싱턴 내셔널스는 2019 월드시리즈에서 역대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 7전 4선승제 원정 4연승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였다[10] 레퍼런스 찾아본 결과 양키스가 더 높은 승률이었는데도 1~2차전을 원정에서 출발했다.[11] 워싱턴 내셔널스는 2019 월드시리즈에서 역대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포스트시즌 7전 4선승제 원정 4연승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였다[12] 199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차전~6차전 4연승 후에 1998년 월드 시리즈 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999년 월드 시리즈 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2년 연속 4-0의 싹쓸이 우승을 거뒀고, 2000년 월드 시리즈 대 뉴욕 메츠를 상대로 2차전까지 잡아 14연승이다. 여기서 토마호크 찹의 8연패가 가장 눈에 띈다(...)[13] 199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차전~6차전 4연승 후에 1998년 월드 시리즈 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999년 월드 시리즈 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2년 연속 4-0의 싹쓸이 우승을 거뒀고, 2000년 월드 시리즈 대 뉴욕 메츠를 상대로 2차전까지 잡아 14연승이다. 여기서 토마호크 찹의 8연패가 가장 눈에 띈다(...)[14] 대럴 스트로베리- 1986년 뉴욕 메츠, 데이비드 콘 & 지미 키- 199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15] 대럴 스트로베리- 1986년 뉴욕 메츠, 데이비드 콘 & 지미 키- 199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