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1980년대 말레이시아는 높은 경제성장으로 개발도상국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이에 맞춰 국제화가 중요시되었으나 정작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었다. 당장 맹글리쉬 문서를 읽어봐도 알 수 있겠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급격한 말레이화로 인해 영어 실력은 서서히 떨어졌고, 이는 국제화에 걸맞지 않는 문제점으로서 말레이시아를 그저 망신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 조호르 주 무아르의 성 안드레아 중학교에서 일하던 G. 샨무감 교사는 이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책도 제대로 읽지 않는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영어실력을 늘려주어서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1989년 Quest라는 이름의 잡지를 낸다. 1989년 7월-9월자의 1부가 처음으로 나오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2014년 7월-9월부로 100부를 맞이했다.
하지만 샨무감은 창간 2년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3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특성상 학생들의 적지 않은 불만을 불러일으켰으며 생각 외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특히나 학생들의 '교육'을 목표로 한 잡지에다가 영어교육이 중점인데, 문제는 중간중간에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있어야 할 단어가 빠져 있거나 하는 등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었고, 아예 PMR(훗날 PT3)이나 SPM 대비를 목표로 제시한 에세이 부문에서 'continued on next page...' 해놓고는 빠져 있는(...) 상황이 발생해서, 결국 신뢰를 잃고 말았다.
이 때문인지 2010년대에 들어 1월-3월부가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다가, 2015년 4월-7월부의 102부가 나온 것을 끝으로 현재는 더 이상 발매되지 않고 있는 모양. 당장 페이스북 페이지를 봐도 2015년 4월로 멈춰있다.
이 때 조호르 주 무아르의 성 안드레아 중학교에서 일하던 G. 샨무감 교사는 이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책도 제대로 읽지 않는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영어실력을 늘려주어서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1989년 Quest라는 이름의 잡지를 낸다. 1989년 7월-9월자의 1부가 처음으로 나오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2014년 7월-9월부로 100부를 맞이했다.
하지만 샨무감은 창간 2년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3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특성상 학생들의 적지 않은 불만을 불러일으켰으며 생각 외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특히나 학생들의 '교육'을 목표로 한 잡지에다가 영어교육이 중점인데, 문제는 중간중간에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있어야 할 단어가 빠져 있거나 하는 등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되었고, 아예 PMR(훗날 PT3)이나 SPM 대비를 목표로 제시한 에세이 부문에서 'continued on next page...' 해놓고는 빠져 있는(...) 상황이 발생해서, 결국 신뢰를 잃고 말았다.
이 때문인지 2010년대에 들어 1월-3월부가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다가, 2015년 4월-7월부의 102부가 나온 것을 끝으로 현재는 더 이상 발매되지 않고 있는 모양. 당장 페이스북 페이지를 봐도 2015년 4월로 멈춰있다.
2. 인터뷰
지금은 그런 거 없지만, 한때는 나라의 이름을 알린 몇몇 학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해서 커버에 대문짝하게 찍어내곤 했었다.
- K. 무랄리데] - 8부(1991년 4월-7월부)의 주인공. 배드민턴 선수로 1990년 말레이시아 열린대회 때 공인받은 인물이다. 해외에까지 진출했던 적도 있으며, 인터뷰 당시 15세로 수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심리학자로 활동 중이다.
- 닝 바이주라 - 19부(1994년 10월-12월부)의 주인공.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로 1991년 보이스 오브 아시아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 뒤 1993년 1집 "Dekat Padamu"로 데뷔했다. 현재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가네시 아시르바탐 - 23부(1995년 10월-12월부)의 주인공. 스크래블 게임 선수로, 어마어마한 양의 단어를 외워 스크래블 게임 경기가 열릴 때마다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특히 남들이 잘 모르는 영어 단어(예: ug, xu, et 등)를 잘 활용했던 것이 그 비법이었다고. 훗날인 2007년에도 다시 경기에 뛰었으며, 현재는 영어교사로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셰일라 마지드와 같은 유명 가수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등의 제안이 들어왔으나, 결국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