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M F1
1. 제원
FCM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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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사
| F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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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 F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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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
| 139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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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 총 10.5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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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
| 3.1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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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
| 4.2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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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 르노 V12 KGM 엔진 2기 (550 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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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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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가 장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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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출력
| 105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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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속도
| 20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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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당 마력
| 7.9 h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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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속거리
| 2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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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섭 능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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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
| 90mm SA45 전차포 1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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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무장
| 47mm SA37 전차포 1문
7.5 mm MAC 31 기관총 6정 20 mm 보포스 기관포 1문 |
탄약 적재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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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인원
|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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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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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 최대 1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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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요
3. 상세
이 대형 전차는 당시 20톤을 넘나들던 전차에 비교하면 비정상으로 크고 앞뒤로 긴 차체에 포탑도 2기를 갖춘 다포탑 전차이기도 했었다. 포탑 1기는 차체 앞부분에, 다른 1기는 뒤쪽에 올려져 있으며, 전면 포탑에는 대구경에 위력이 큰 주포, 그리고 후방 포탑에는 소구경에 연사속도가 빠른 속사포를 갖춰 화력상 가진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사상으로 설계되었다. 후방 포탑은 전방 포탑 보다 높게 배치되어 서로의 사각을 가급적 해치지 않게끔 고안되었는데, 그 결과 필요없는 장갑이 더 늘어나 중량은 더욱 무거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등장 기준으로 F1 전차는 가장 두꺼운 중장갑을 두를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1940년 시점에서 설계 중량은 거의 140톤에 가까왔으며, 실제로 양산을 위해 발주 지시까지 간 전차 중에서는 그때까지 등장한 제일 무거운 초중전차였다. 프랑스 최강의 르노 엔진 2기로도 이 전차의 속력은 이상적인 조건에서도 겨우 시속 20 km가 한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F1 전차의 주된 용도는 독일군의 포화를 무릅쓰면서 방어선[3] 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지 적 전차와 싸우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FCM F1의 개발 지연과 실패까지 이르게 된 배경은 매우 복잡하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 육군이 여러 종류의 초중전차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서로 설계 목표나 컨셉이 서로 중복되어 요구사양이 여러차례 변했던 군 수뇌부의 탓도 크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각 초중전차 계획을 위해서 복수의 기업이 한 종류 혹은 그 이상의 사업 신청서를 제안하며 경합에 뛰어들고 있었다. 결국 2차 대전이 발발하여 개발 착수도 못해보고 불발된 불운의 전차가 되었다.
그러나 F1 전차의 주된 용도는 독일군의 포화를 무릅쓰면서 방어선[3] 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지 적 전차와 싸우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FCM F1의 개발 지연과 실패까지 이르게 된 배경은 매우 복잡하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 육군이 여러 종류의 초중전차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것들은 서로 설계 목표나 컨셉이 서로 중복되어 요구사양이 여러차례 변했던 군 수뇌부의 탓도 크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각 초중전차 계획을 위해서 복수의 기업이 한 종류 혹은 그 이상의 사업 신청서를 제안하며 경합에 뛰어들고 있었다. 결국 2차 대전이 발발하여 개발 착수도 못해보고 불발된 불운의 전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