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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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87.8%▼ 3.3%p
| ||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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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지역구
| 총합
| 비율
|
127석
| 127석
| 54.1%
| |
79석
| 79석
| 34.3%
| |
1석
| 1석
| 0.4%
| |
26석
| 26석
| 11.2%
| |
1. 개요
2. 배경
제3대 민의원의원 선거에서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여 숫자놀음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에도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나 1957년부터 미국의 원조가 감소하기 시작해[1] 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경제조차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경쟁률은 3.2대 1이었으며(후보자 841명) 지난 총선보다 더 안정되었으며 참가한 정당과 사회단체는 총 14개이다. 또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38선에서 맞춰 짜여진 선거구가 아닌 휴전선 이남의 전 지역에 대해 치뤄진 첫 선거다. 233석이 정원이며 과반 획득을 위한 의석수는 117석이었다.
경쟁률은 3.2대 1이었으며(후보자 841명) 지난 총선보다 더 안정되었으며 참가한 정당과 사회단체는 총 14개이다. 또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38선에서 맞춰 짜여진 선거구가 아닌 휴전선 이남의 전 지역에 대해 치뤄진 첫 선거다. 233석이 정원이며 과반 획득을 위한 의석수는 117석이었다.
3. 결과
정당 득표율
|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3,607,092
| 42.1%
| |||||
2,934,036
| 34.2%
| |||||
53,716
| 0.6%
| |||||
50,568
| 0.6%
| |||||
1,857,707
| 21.7%
| |||||
총합
| 9,077,835
| 100.0%
| ||||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 결과
| ||
제1당
| 127석
| |
제2당
| 79석
| |
제3당
| 1석
| |
-
| 26석
| |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
| |||||
지역
| 합계
| ||||
서울
| 1
| 14
| 0
| 1
| 16
|
경기
| 15
| 8
| 0
| 2
| 25
|
강원
| 15
| 2
| 0
| 3
| 20
|
충남
| 15
| 6
| 0
| 1
| 22
|
충북
| 8
| 4
| 0
| 1
| 13
|
전남
| 18
| 10
| 1
| 3
| 32
|
전북
| 10
| 11
| 0
| 3
| 24
|
경남
| 20
| 15
| 0
| 5
| 40
|
경북
| 25
| 7
| 0
| 6
| 38
|
제주
| 1
| 1
| 0
| 1
| 3
|
합계
| 127 (54.1%)
| 79 (34.3%)
| 1 (0.4%)
| 26 (11.2%)
| 233 (100%)
|
자유당이 과반을 얻었으나 127석으로 지난 번보다 의석 비율이 줄게 되었다.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무소속 의원 수는 26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반면 조병옥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총 79석을 차지하여 어느 정도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내 정당은 자유당, 민주당, 통일당[2] 3개뿐이었다. 요약하자면 양당제의 경향이 나타난 첫 선거.
여촌야도 현상은 더욱 뚜렷해져 자유당은 서울특별시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서울의 16개 의석 중 여당 자유당이 획득한 의석은 단 1곳. 민주당이 14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해 굴욕을 면치 못했으며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서울의 민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다만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남과 호남에서 자유당이 앞섰기 때문에 최종 의석 수는 꽤 차이가 났다.[3]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는 자유당 안용백 후보가 닭죽 사건이라는 부정선거를 일으켰다가 당선무효가 되기도 했다. 근데 재선거 때 또 자유당 후보인 황성수가 당선되었다(...). 또한 이정재는 원래 경기도 이천군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이기붕에게 선거구를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