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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농구대잔치 출범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프로부"가 존재했던 대회로 외국인 선수들까지 모두 출전하여 프리시즌 개념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일반부는 전대회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농구 최고 권위의 대회"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상무,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이 격돌하였다.
1998년 10월 8일 개막하여 10월 31일까지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현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SK텔레콤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게 되면서 당시 운영하던 PC통신(;;) 서비스명을 타이틀로 잡아, 대회 공식명칭은 "넷츠고배 1998 농구대잔치"였다.
1998년 10월 8일 개막하여 10월 31일까지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현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SK텔레콤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게 되면서 당시 운영하던 PC통신(;;) 서비스명을 타이틀로 잡아, 대회 공식명칭은 "넷츠고배 1998 농구대잔치"였다.
2. 참가팀
- 대학/일반부: 대학농구연맹 소속 10개팀 중 9팀(단국대 불참)에 상무까지 총 10개팀이 참가하였다.
참가팀
| 주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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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
| 포워드
|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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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윤(4년,180) 강혁(4년,187)
| 윤훈원(3년,195)
김중길(2년,197) | ||
김완수(3년,180) 김상우(4년,182)
| 손창환(4년,192) 이영준(3년,192)
| 문혁주(1년,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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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3년,198)
김대환(2년,193) | |||
김정재(2년,185) 송태영(3년,198)
서영권(1년,193) | 최정우(2년,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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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2년,187) 이병석(3년,190)
박성운(1년,180) | 최훈석(4년,180) 길도익(4년,191)
박영민(1년,189) | 장영재(4년,196)
박종덕(3년,198) | |
김병철(185) 김정인(190)
이상영(188) 지형근(190) | 박재일(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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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배(3년,180) 김종흥(3년,185)
이현준(2년,193) | 임영훈(2년,193)
이한권(1년,197) | ||
이재훈(4년,193)
최종규(4년,202)[6] | |||
이홍수(4년,179) 김성모(3년,182)
강준구(1년,185) | 김태완(1년,202)
민병희(4년,197) | ||
- 프로부: KBL 소속 10개팀이 모두 참가하였다.
3. 운영방식
- 대학-일반부
- 조별리그: 5팀씩 2조로 나뉘어 조별 풀리그를 통해 각 조 3위까지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했다.
- 6강 플레이오프: 각조 상위 3팀 씩 총 6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6강, 4강전, 결승전 모두 단판)
- 프로부
- 조별리그 및 결승전: 5팀씩 2조로 나뉘어 조별 풀리그를 통해 각 조 1위가 결승에 진출했다.
4. 대회결과
4.1. 대학-일반부
- 조별리그순위A조B조1위중앙대4 - 0상무4 - 02위한양대3 - 1고려대3 - 13위동국대2 - 2경희대※1 - 34위명지대1 - 3연세대※1 - 35위건국대0 - 4성균관대※1 - 3※ 승패 동률 시 골득실로 순위 결정.
- 6강 플레이오프
4.2. 프로부
- 조별 예선순위A조B조1위4 - 03 - 12위3 - 13 - 13위2 - 22 - 24위1 - 32 - 25위0 - 40 - 4※ 승패 동률 시 골득실로 순위 결정.
- 결승전105 : 97
4.3. 대회 결산
4.3.1. 대학-일반부
4.3.2. 프로부
[1] 프로 1~2년차 선수들 중 장신자원들이 입대를 미루거나(박훈근, 박재헌) 공익근무요원으로 빠지면서(전희철, 우지원, 허남영), 1998년도 입대자 중 최장신이자 명지대 시절 4,5번으로 뛰기도 했던 포워드 박재일을 센터로 쓰는 "꼬꼬마군단"이었다. 당시 감독이 장신포워드 성애자 추일승 감독이었다는게 아이러니..[2] 프로 1~2년차 선수들 중 장신자원들이 입대를 미루거나(박훈근, 박재헌) 공익근무요원으로 빠지면서(전희철, 우지원, 허남영), 1998년도 입대자 중 최장신이자 명지대 시절 4,5번으로 뛰기도 했던 포워드 박재일을 센터로 쓰는 "꼬꼬마군단"이었다. 당시 감독이 장신포워드 성애자 추일승 감독이었다는게 아이러니..[3] 팀내 주전급 기량을 가진 선수중 그나마 장신이라는 이유로 1998년 한해동안 골밑자원으로 뛰면서, 제2의 김택훈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들었다.[4]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서장훈, 구본근, 김택훈 졸업 후 팀내 최장신 선수였으나, 기량이 부족해 거의 뛰지 못했다. 덕분에 황성인-조동현-조상현이라는 대학 최강의 백코트를 보유한 연세대였음에도, 은희석-이재훈의 골밑은 1998년 시즌 대학농구 최약체 수준이었다.[5] 팀내 주전급 기량을 가진 선수중 그나마 장신이라는 이유로 1998년 한해동안 골밑자원으로 뛰면서, 제2의 김택훈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들었다.[6]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서장훈, 구본근, 김택훈 졸업 후 팀내 최장신 선수였으나, 기량이 부족해 거의 뛰지 못했다. 덕분에 황성인-조동현-조상현이라는 대학 최강의 백코트를 보유한 연세대였음에도, 은희석-이재훈의 골밑은 1998년 시즌 대학농구 최약체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