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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기결과
2.1. 1차전 : 10월 21일, 그린 스타디움 고베
2.2. 2차전 : 10월 22일, 그린 스타디움 고베
- 승리투수 : 야마베 후토시(야쿠르트, 1승)
- 패전투수 : 히라이 마사후미(오릭스, 1패)
2.3. 3차전 : 10월 24일, 메이지진구 야구장
- 승리투수 : 타카츠 신고(야쿠르트, 1승 1세이브)
- 패전투수 : 히라이 마사후미(오릭스, 2패)
야쿠르트가 1회 말부터 토마스 오말리의 적시타로 선제점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5회 초 오릭스가 스즈키 이치로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 야쿠르트는 바로 5회 말 대타로 나선 이나바 아츠노리의 희생 플라이로 다시 앞서나가지만, 7회 초 오릭스가 다구치 소와 D.J의 적시타로 3점을 따내면서 역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야쿠르트가 8회 말 공격 때 2사 만루 상황에서 후루타 아쓰야가 친 유격수 쪽 땅볼이 2루 베이스 커버가 살짝 늦는 바람에 세이프 판정을 받아 내야안타로 처리되어 야쿠르트가 1점을 만회하고,[4] 뒤이어 9회 말 핸슬리 뮬렌스가 이틀 전에 이어 다시 구원 투수로 나온 히라이 마사후미에게서 동점 홈런을 빼앗으면서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그 후 연장 10회 말, 토마스 오말리의 사구, 후루타 아쓰야의 2루타로 2,3루 찬스를 만들고, 뒤이어 이케야마 타카히로가
2.4. 4차전 : 10월 25일, 메이지진구 야구장
- 승리투수 : 코바야시 히로시(오릭스, 1승)
- 패전투수 : 이토 아키미츠(야쿠르트, 1패)
야쿠르트는 1승만 거두면 그대로 우승. 반면 오릭스는
야쿠르트가 5회 말 이이다 테츠야의 적시타로 선제점을 따내는데 성공. 이후 양측 모두 무득점으로 경기가 흘러가며 야쿠르트가 이대로 스윕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두는 줄 알았으나..
9회 초 오릭스가 오가와 히로후미의 솔로 홈런으로 기적적으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오릭스는 5차전이 치뤄지면 선발 투수로 출장시킬 예정이었던 코바야시 히로시를 구원 등판시키기로 결정. 연장전에서도 양측 모두 무득점으로 경기가 흘러가다 연장 11회 말, 야쿠르트가 대타로 나선 아라이 유키오가 사구로 출루, 뒤이어 도바시 카츠유키가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1사 1,2루의 끝내기 찬스를 얻는다. 그러나 코바야시 히로시는 후속 타자인 토마스 오말리와의 치열한 14구 승부 끝에 오말리에게서 삼진을 빼앗고, 뒤이어 나온 후루타 아쓰야도 범퇴 처리하면서 기적적으로 끝내기를 막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연장 12회 초 오릭스가 D.J의 솔로 홈런으로 우세에 성공. 야쿠르트가 이후 12회 말 때 득점에 실패하면서 오릭스가 1승을 만회하는 데 성공한다.
2.5. 5차전 : 10월 26일, 메이지진구 야구장
- 승리투수 : 테리 브로스(야쿠르트, 2승)
- 패전투수 : 타카하시 코이치(오릭스, 1패)
- 세이브 : 타카츠 신고(야쿠르트, 1승 2세이브)
3. 타이틀 시상
4. 기타
- 상단에도 적혀 있다시피,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처음으로 홈구장인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일본시리즈 우승기를 들어올린 시리즈다. 1978년 첫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우승이 결정된 7차전은 홈 경기였으나, 당시 대학야구 리그 기간이랑 일본시리즈 기간이 겹쳤기 때문에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일본시리즈 홈경기를 개최하지 못하고 앙숙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고라쿠엔 구장에서[7] 일본시리즈 홈경기를 개최해야 했다는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이후 80년대의 암흑기를 거쳐 노무라 카츠야의 ID야구를 통해 다시 강팀이 되어 1993년 2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뒀을 땐 우승이 결정된 7차전이 상대 팀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구장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8]에서 열렸던 원정경기였기 때문에 홈구장에서 우승기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어찌보면 야쿠르트의 기나긴 한을 푼 시리즈이기도 한 셈.
[1] 먼저 사토 요시노리가 8월 26일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열린 VS 킨테츠 버팔로즈 戰에서 기록하였고,(40대 투수로써는 최초 기록) 뒤이어 테리 브로스가 1995년 9월 9일 도쿄돔에서 열린 VS 요미우리 자이언츠 戰에서 기록하였다.[2] 루팡 3세로 유명한 그 음악가랑은 한국 한정으로 동명이인이다. 일본에선 이름 부분의 한자가 다르다.(작곡가 쪽은 한자 이름이 雄二, 야구선수 쪽은 한자 이름이 雄次)[3] D.J는 등록명으로 본명은 더그 제닝스. 원래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으나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백업이나 마이너리그에서만 머무르다가 1995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한다. 그러나 입단 이후 3년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결국 퇴단. 이후 독립 리그 등을 떠돌아다니다 200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4] 이때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 판정에 반발하여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여 10분간 경기가 중단되었다.[5] 고쿠테츠 스왈로즈 시절 홈구장으로 쓰긴 했지만, 엄연히 고쿠테츠 시대 한정.[6] 세이부 돔으로 변모하기 전에는 멋진 풍경을 가졌던 야외구장으로 유튜브에서 그 당시의 구장 모습을 엿볼수 있다.[7] 고쿠테츠 스왈로즈 시절 홈구장으로 쓰긴 했지만, 엄연히 고쿠테츠 시대 한정.[8] 세이부 돔으로 변모하기 전에는 멋진 풍경을 가졌던 야외구장으로 유튜브에서 그 당시의 구장 모습을 엿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