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1. 출전권 배당2. 예선
2.1. 1조([[유럽]])2.2. 2조([[유럽]])2.3. 3조([[유럽]])[* 지난 대회 예선에 이어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이 통째로 예선의 한 조가 되었다.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은 1884년부터 1984년까지 열렸던 영국 홈네이션 4개국 간의 축구 대회로 원래는 순수한 자기네들끼리의 대회였지만 FIFA의 ~~편애~~ 배려로 인해 여기에서 1,2위 팀이 1954년 월드컵 본선권을 갖게 되었다.]2.4. 4조([[유럽]])2.5. 5조([[유럽]])2.6. 6조([[유럽]])2.7. 7조([[유럽]])2.8. 8조([[유럽]])2.9. 9조([[유럽]])2.10. 10조([[유럽]])2.11. 11조([[남아메리카]])2.12. 12조([[북아메리카]])2.13. 13조([[아시아]])
1. 출전권 배당
14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출전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지역예선에는 총 32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 14개 팀이 진출하였다.
2. 예선
- 1, 2, 4, 5, 6, 8, 10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7, 9조는 2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3조는 4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와 조 2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1조는 4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2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 13조는 3팀으로 구성되었고 조 1위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2.1. 1조(유럽)
경기장
| ||
경기일
| 1953.06.24
| |
국 가
| ||
득 점
| 2
| 3
|
득점자
| 군나르 토레센(3')
크누트 달렌(15') | 헤르베르트 빈케르트(16')
베르너 오토 (30') 게르하르트 지틀(55')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0.11
| |
국 가
| ||
득 점
| 3
| 0
|
득점자
|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1.22
| |
국 가
| ||
득 점
| 5
| 1
|
득점자
| 한스 노르달(26')
| |
경기장
| ||
경기일
| 1954.03.28
| |
국 가
| ||
득 점
| 1
| 3
|
득점자
| 헤르베르트 마르틴(68')(PK)
| 막스 몰록(36')
(막스 몰록)(48') 한스 섀퍼(84') |
서독은 3승1무 12득점 3실점의 우월한 실력으로 손쉽게 본선에 올랐다. 지난 대회에서는 협회결성이 늦어서 예선조차 치르지 못했던 자르는 노르웨이에 1승 1무(3-2,0-0)를 거두며 선전했으나 서독에 탈탈 털리며(1-3,0-3) 탈락. 그리고 이 예선이 자르 축구대표팀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이후 자르는 2년 뒤 정식으로 서독에 편입되면서 대표팀도 사라졌다.
2.2. 2조(유럽)
경기장
| ||
경기일
| 1953.05.25
| |
국 가
| ||
득 점
| 2
| 4
|
득점자
| 칼레비 레토비르타(49')
칼레비 레토비르타(75') | 앙리 코팡(4')
레오폴드 아눌(9') 앙리 코팡(26') 앙리 코팡(83') |
경기장
| ||
경기일
| 1953.05.28
| |
국 가
| ||
득 점
| 2
| 3
|
득점자
| 벵트 베른트손(20')
아르네 셀모손(26') | 레오폴드 아눌(28')
장루이 스트래망(37') 빅토르 렘베레흐츠(40') |
경기장
| ||
경기일
| 1953.08.05
| |
국 가
| ||
득 점
| 3
| 3
|
득점자
| 칼레비 레토비르타(63')
올라비 라티넨(67') 닐스 리크베르크(70') | 닐스아케 산델(9')
한스 페르손(23') 닐스아케 산델(71') |
경기장
| ||
경기일
| 1953.08.16
| |
국 가
| ||
득 점
| 4
| 0
|
득점자
| 괴스타 산베리(22')
닐스아케 산델(24') 헤베르트 산딘(56') 닐스아케 산델(61') | |
경기장
| ||
경기일
| 1953.09.23
| |
국 가
| ||
득 점
| 2
| 2
|
득점자
| 마티유 볼렌(25')
마티유 볼렌(75') | 올라비 라티넨(83')
요르마 바이헬라(90') |
2.3. 3조(유럽)[5]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3
| 3
| 0
| 0
| 11
| 4
| +7
| 6
| |
2
| 3
| 1
| 1
| 1
| 8
| 8
| 0
| 3
| |
3
| 3
| 1
| 0
| 2
| 4
| 7
| -3
| 2
| |
4
| 3
| 0
| 1
| 2
| 5
| 9
| -4
| 1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0.03
| |
국 가
| ||
득 점
| 1
| 3
|
득점자
| 노먼 로카트(72')(PK)
| 찰스 플레밍(47')
찰스 플레밍(69') 존 헨더슨(89')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0.10
| |
국 가
| ||
득 점
| 1
| 4
|
득점자
| 존 올처치(22')
| 데니스 윌쇼(45')
데니스 윌쇼(49') 나다니엘 로프트하우스(52') 나다니엘 로프트하우스(53')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1.04
| |
국 가
| ||
득 점
| 3
| 3
|
득점자
| 앨런 브라운(19')
로버트 존스톤(42') 로리 레일리(58') | 존 찰스(49')
존 올처치(73') 존 찰스(88')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1.11
| |
국 가
| ||
득 점
| 3
| 1
|
득점자
| 해럴드 해솔(10')
해럴드 해솔(60') 나다니엘 로프트하우스(75') | 에디 맥모런(54')
|
경기장
| ||
경기일
| 1954.03.31
| |
국 가
| ||
득 점
| 1
| 2
|
득점자
| 존 찰스(80')
| 피터 맥파랜드(1')
피터 맥파랜드(52') |
경기장
| ||
경기일
| 1954.04.03
| |
국 가
| ||
득 점
| 2
| 4
|
득점자
| 앨런 브라운(7')
윌리 오몬드(89') | 이보르 브로디스(13')
존 니콜스(50') 로날드 알렌(68') 제임스 멀렌(83') |
다른 조들이 각각 홈&어웨이로 팀당 4경기를 치룬 반면 영국 홈네이션만으로 이루어진 3조는 유일하게 홈&어웨이 개념없이 팀당 3게임만을 치루는 풀리그를 했다. 잉글랜드가 3전승으로 조1위, 스코틀랜드는 1승1무1패로 조2위를 차지했고, 지난 대회와 달리 스코틀랜드는 이번에는 얌전하게 본선에 진출했다.
2.4. 4조(유럽)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4
| 4
| 0
| 0
| 20
| 4
| +16
| 8
| |
2
| 4
| 2
| 0
| 2
| 8
| 6
| +2
| 4
| |
3
| 4
| 0
| 0
| 4
| 1
| 19
| -18
| 0
|
경기장
| ||
경기일
| 1953.09.20
| |
국 가
| ||
득 점
| 1
| 6
|
득점자
| 앙투앙 콘(6')
| 로제 피앙토니(5')
레이몽 코파(10') 레이몽 시시(41') 레옹 글로바키(44') 에두아르 카르구(73') 피에르 클라미옹(88')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0.04
| |
국 가
| ||
득 점
| 3
| 5
|
득점자
| 패디 라이언(58')(PK)
데이브 월쉬(83') 프랭크 오파렐(88') | 레옹 글로바키(23')
아르망 펑베른(40') 조세프 울라키(50') 조세프 울라키(69') 피에르 클라미옹(72')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0.28
| |
국 가
| ||
득 점
| 4
| 0
|
득점자
| 아서 피츠시몬스(14')
패디 라이언(48')(PK) 토미 에글링턴(59') 아서 피츠시몬스(83') | |
경기장
| ||
경기일
| 1953.12.17
| |
국 가
| ||
득 점
| 8
| 0
|
득점자
| ||
프랑스가 4전승으로 쉽게 진출했다. 룩셈부르크는 4전패 1득점19실점으로 광탈하며 승점자판기의 오랜 역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2.5. 5조(유럽)
경기장
| ||
경기일
| 1953.09.27
| |
국 가
| ||
득 점
| 9
| 1
|
득점자
| 에른스트 옥비르크(13')
에리히 프롭스트(14') 에리히 프롭스트(19') 에리히 프롭스트(31') 에리히 프롭스트(59') 에른스트 하펠(68')(PK) 에리히 프롭스트(70') 테오도르 바그너(83') 로베르트 딘스트(87') | 주제 아구아스(60')
|
2.6. 6조(유럽)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1월 6일
| |
국 가
| ||
득 점
| 4
| 1
|
득점자
| 베난시오 가르시아(13')
아구스틴 가인사(48') 미켈 곤살레스(49') 라파엘 알수아(65') | 레세프 아다니르(31')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3월 17일
| |
국 가
| ||
득 점
| 2
| 2
|
득점자
| 부르한 사르군(25')
수아트 마마트(64') | 호세 루이스 아레체(11')
아드리안 에스쿠데로(78') |
90년대 이후였다면 골득실로 스페인이 본선에 올랐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개념이 없던 관계로 중립국 이탈리아에서 3차전을 치뤘는데 2:2 무승부를 기록, 동전 던지기(…)로 터키가 승리했다.
2.7. 7조(유럽)
폴란드는 내부사정으로 기권, 헝가리가 한 경기도 안치루고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 폴란드로서는 하필 세계최강 헝가리와 같은 조에 걸렸으니 본선 가능성이 낮은 편이었다.
2.8. 8조(유럽)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4
| 3
| 1
| 0
| 5
| 1
| +4
| 7
| |
2
| 4
| 2
| 0
| 2
| 5
| 5
| 0
| 4
| |
3
| 4
| 0
| 1
| 3
| 3
| 7
| -4
| 1
|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6월 28일
| |
국 가
| ||
득 점
| 3
| 1
|
득점자
| 조제프 페초프스키(20')
조제프 페초프스키(30') 코르넬 에네(82') | 도브로미르 타슈코프(53')
|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9월 6일
| |
국 가
| ||
득 점
| 1
| 2
|
득점자
| 스테판 보즈코프(55')(PK)
| 프란티섹 블크(5')
프란티섹 블크(40') |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10월 11일
| |
국 가
| ||
득 점
| 1
| 2
|
득점자
| 이반 콜레프(28')
| 가브릴 세르포조(27')
발레리우 칼리노이우(52') |
2.9. 9조(유럽)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11월 13일
| |
국 가
| ||
득 점
| 1
| 2
|
득점자
| 아드디바(33')
| 암레토 프리냐니(62')
에르메스 무치넬리(79')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1월 24일
| |
국 가
| ||
득 점
| 5
| 1
|
득점자
| 에기스토 판돌피니(1')
암레토 프리냐니(62') 잠피에로 보니페르티(65') 암레토 프리냐니(62') 에르메스 무치넬리(79') 에두아르도 리카니(84') 잠피에로 보니페르티(86') | 알라 엘하무리(32')
|
이집트는 처음으로 유럽 예선에 나왔다. 시리아나 레바논도 그렇고 이집트도 유로바스켓 같은 대회에 참가하던 적도 있듯이 아프리카 및 아랍지역 나라로서 당시 유럽 대회나 예선에 나올 수 있었다.(정확하게 당시에는 아프리카 축구협회나 지역 스포츠 협회가 없었기에) 그리고 1-2, 1-5로 털리며 탈락했다.
2.10. 10조(유럽)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4
| 4
| 0
| 0
| 4
| 0
| +4
| 8
| |
2
| 4
| 2
| 0
| 2
| 3
| 2
| +1
| 4
| |
3
| 4
| 0
| 0
| 4
| 0
| 5
| -5
| 0
|
2.11. 11조(남아메리카)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2월 14일
| |
국 가
| ||
득 점
| 4
| 0
|
득점자
| 마누엘 루고(30')
호세 파로디(52') 이레네오 헤르모시야(70') 실비오 파로디(79') |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2월 21일
| |
국 가
| ||
득 점
| 1
| 3
|
득점자
| 테드 로블레도(16')
| 마누엘 루고(17')
마누엘 루고(63') 호세 파로디(84')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3월 21일
| |
국 가
| ||
득 점
| 4
| 1
|
득점자
| 보텔류(60')
발타자르(62') 보텔류(85') 마우리뉴(90') | 에울로히오 마르티네스(75')
|
1950년 월드컵을 자기네들이 아닌 브라질이 개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페루가 기권하여 나머지 3개국간 리그가 치뤄졌고, 지난 대회 준우승한 브라질이 나머지 팀들을 압살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2.12. 12조(북아메리카)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4
| 4
| 0
| 0
| 19
| 1
| +18
| 8
| |
2
| 4
| 2
| 0
| 2
| 7
| 9
| -2
| 4
| |
3
| 4
| 0
| 0
| 4
| 2
| 18
| -16
| 0
|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7월 19일
| |
국 가
| ||
득 점
| 8
| 0
|
득점자
| 토마스 발카사르(23')
토마스 발카사르(26') 그레고리오 고메스(27') 니콜라스 텔레스(34') 페드로 아르나우다(38') 페드로 아르나우다(69') 토마스 발카사르(76') 페드로 아르나우다(85') | |
경기장
| ||
경기일
| 1953년 12월 27일
| |
국 가
| ||
득 점
| 0
| 4
|
득점자
| 라파엘 아발로스(6')
호세 루이스 라마드리드(15') 호세 루이스 라마드리드(59') 토마스 발카사르(65') |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1월 10일
| |
국 가
| ||
득 점
| 4
| 0
|
득점자
| 토마스 발카사르(5')
빌리 셰펠(16')(자책골) 호세 루이스 라마드리드(47') 호세 나랑호(63') |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1월 14일
| |
국 가
| ||
득 점
| 3
| 1
|
득점자
| 알프레도 토레스(60')
호세 루이스 라마드리드(82') 알프레도 토레스(89') | 빌 루비(6')
|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3월 3일
| |
국 가
| ||
득 점
| 2
| 3
|
득점자
| 제라르 엘리(60')(PK)
제라르 엘리(89') | 코넬리우스 케이시(20')
에프레인 차쿠리안(42') 빌 루비(83') |
2.13. 13조(아시아)
경기장
| ||
경기일
| 1954년 3월 7일
| |
국 가
| ||
득 점
| 1
| 5
|
득점자
| 나가누마 켄(16')
| 정남식(22')
최광석(34') 성낙운(65') 최충민(82') 최충민(85') |
중화민국이 내부사정으로 기권, 한국과 일본간의 경기만이 치뤄졌다. 최초의 공식 한일전. 경기는 홈&어웨이가 원칙이었으나, 당시 일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두 경기를 다 일본 도쿄에서 치러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왜놈들이 대한민국 땅을 밟는다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암!!! 이때, 한국 대표팀은 만약 패한다면 귀국하지 않고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결사의 각오로 경기를 치렀고, 결국 2경기에서 1승 1무[9]로 일본을 완파하고 본선에 진출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로서 최초로 아시아 월드컵 출전국이 된다.[10]
[1] 터키와 이스라엘, 시리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거리상으로는 유럽과 더 가깝기 때문에 유럽 지역 예선에 집어넣었다. 당시 시리아를 제외한 중동 국가들이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터키와 이스라엘은 현재에도 유럽 지역 예선을 통해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다[2] 터키와 이스라엘, 시리아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거리상으로는 유럽과 더 가깝기 때문에 유럽 지역 예선에 집어넣었다. 당시 시리아를 제외한 중동 국가들이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터키와 이스라엘은 현재에도 유럽 지역 예선을 통해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다[3] 1. FC 뉘른베르크의 홈구장 막스 몰록 슈타디온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4] 1. FC 뉘른베르크의 홈구장 막스 몰록 슈타디온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5] 지난 대회 예선에 이어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이 통째로 예선의 한 조가 되었다.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은 1884년부터 1984년까지 열렸던 영국 홈네이션 4개국 간의 축구 대회로 원래는 순수한 자기네들끼리의 대회였지만 FIFA의 편애 배려로 인해 여기에서 1,2위 팀이 1954년 월드컵 본선권을 갖게 되었다.[6]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 가서야 이 규정이 도입되었다.[7] 1차전 5:1, 2차전 2:2[8] 주권 국가라는 것을 명기한 이유는 193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가 출전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전 대회인 1950년 월드컵에는 인도가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전에 기권하였다.[9] 1차전 5:1, 2차전 2:2[10] 주권 국가라는 것을 명기한 이유는 193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가 출전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전 대회인 1950년 월드컵에는 인도가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전에 기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