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909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의병 허필(許苾)의 아들로 태어나 1915년 부모를 따라 만주 요녕성 통화현[1]으로 이주했다.[2]
1929년 흑룡강성 빈현 가판참[3]으로 이주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30년 초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그 해 5월에 있던 '간도 5·30봉기'에 참가하였고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을 주도했다가 중국경찰에 체포되어 선양시 감옥에서 1년간 수감되었다.[4]
만주사변이 일어난 직후 출소한 그는 중국공산당 빈현 특별지부 위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932년 1월에는 중국공산당의 만주성위 빈현 특별지부 선전원이 되었다. 1933년 봄 탕원현[5]에서 일본에 맞서싸울 유격대의 결성을 지원했으며, 10월 주하현[6]에서의 반일유격대 결성에 참여하였다.[7]
1934년 6월 28일 주하유격대가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재편성되자 제3단 정치위원으로 부임하였고 그 해 가을에 제1대대 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35년 1월 합동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사로 편성되자 제2단장이 되었고 3월에는 일본군의 춘기토벌에 대항해 유수하자 전투, 소량수하자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36년 초 인민혁명군 제3군 제3사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중국공산당 북만임시성위원회 위원 겸 동북항일연군 제3군 1사 정치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37년 2월 동북항일연군 사령부에서 의동지구 여러 군단의 단결과 합동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의동판사처를 결성하자, 사무처 주임이 되었다.
6월 항일연군 제9군 정치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겨울에 항일연군 제9군 제3사 사장으로서 해륜현·영안현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39년 1월에는 중국공산당 북만성위원회 집행위원 겸 눈해지구대표단 부지휘, 용남지휘부 책임을 맡았고, 동북항일연군 제 3·4지대와 독립 제1·2사를 지휘하였다.[8]
4월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되었다. 1940년 봄 제3로군 제12지대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풍락진 전투에 참전했다. 1941년 일본의 토벌에 맞서 항일연군 제9·12지대에서 유격활동을 계속했다. 1942년 8월 3일 북만주 경성현(慶城縣) 청봉령(靑峰嶺)[9]에서 전사했다.[10]
1929년 흑룡강성 빈현 가판참[3]으로 이주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30년 초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그 해 5월에 있던 '간도 5·30봉기'에 참가하였고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을 주도했다가 중국경찰에 체포되어 선양시 감옥에서 1년간 수감되었다.[4]
만주사변이 일어난 직후 출소한 그는 중국공산당 빈현 특별지부 위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932년 1월에는 중국공산당의 만주성위 빈현 특별지부 선전원이 되었다. 1933년 봄 탕원현[5]에서 일본에 맞서싸울 유격대의 결성을 지원했으며, 10월 주하현[6]에서의 반일유격대 결성에 참여하였다.[7]
1934년 6월 28일 주하유격대가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재편성되자 제3단 정치위원으로 부임하였고 그 해 가을에 제1대대 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35년 1월 합동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사로 편성되자 제2단장이 되었고 3월에는 일본군의 춘기토벌에 대항해 유수하자 전투, 소량수하자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36년 초 인민혁명군 제3군 제3사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중국공산당 북만임시성위원회 위원 겸 동북항일연군 제3군 1사 정치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37년 2월 동북항일연군 사령부에서 의동지구 여러 군단의 단결과 합동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의동판사처를 결성하자, 사무처 주임이 되었다.
6월 항일연군 제9군 정치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겨울에 항일연군 제9군 제3사 사장으로서 해륜현·영안현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39년 1월에는 중국공산당 북만성위원회 집행위원 겸 눈해지구대표단 부지휘, 용남지휘부 책임을 맡았고, 동북항일연군 제 3·4지대와 독립 제1·2사를 지휘하였다.[8]
4월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되었다. 1940년 봄 제3로군 제12지대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풍락진 전투에 참전했다. 1941년 일본의 토벌에 맞서 항일연군 제9·12지대에서 유격활동을 계속했다. 1942년 8월 3일 북만주 경성현(慶城縣) 청봉령(靑峰嶺)[9]에서 전사했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