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解
2. 海
2.1. 본관
2.2. 유래
※ 8가구 모두 전라남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영암군에 김해 해씨 3가구, 진주 해씨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그리고 나주시에 김해 해씨 2가구, 목포시에 김해 해씨 1가구가 나타났다.
이중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에 살던 해종한(海宗漢)씨는 해씨가 명 태조 때 중국에서 이주해 온 귀화성[2]이라고 전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살던 해종수(海宗洙)씨는 그 내력에 대해 당시로부터 약 50년 전[3]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주해왔다고 증언했다.
한편, 김해 해씨 문중에서는 시조를 명나라 홍무제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해서필(海瑞必)로 삼고 있다. 해서필은 호가 양촌(陽村)으로 홍무제의 명을 받아 대도독(大都督)의 직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조선 태조가 그의 공훈을 높이 사 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에 책봉하였다고 한다.[5] 시조의 묘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다.#
이중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에 살던 해종한(海宗漢)씨는 해씨가 명 태조 때 중국에서 이주해 온 귀화성[2]이라고 전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살던 해종수(海宗洙)씨는 그 내력에 대해 당시로부터 약 50년 전[3]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주해왔다고 증언했다.
한편, 김해 해씨 문중에서는 시조를 명나라 홍무제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해서필(海瑞必)로 삼고 있다. 해서필은 호가 양촌(陽村)으로 홍무제의 명을 받아 대도독(大都督)의 직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조선 태조가 그의 공훈을 높이 사 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에 책봉하였다고 한다.[5] 시조의 묘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다.#
2.3. 유명인
[1] 사실 이런 식으로 줄어든 이유는 2008년경 호주제 폐지로 등으로 인해 그 이후 태어난 신생아들의 다수가 성씨를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성씨 때문에 놀림받은 경우가 대다수.[2] 이와 관련하여 명나라의 유명한 청백리였던 해서가 있다.[3] 1880년경[4]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어판 위키백과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5] 해서필(海瑞必)이 조선에서 큰 공을 세워 봉군까지 될 정도였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단 한 차례라도 논하지 않았을리가 없으며, 또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부상서는 조선시대 이조판서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서 명나라 초기에 이부상서를 지낼만큼 고위관료였다면 적어도 바이두 백과[4]의 이부상서(吏部尚书) 항목에 언급되었을텐데, 바이두 자체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신원이 불확실하므로 믿기는 어려운 정보이다.[6]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3동에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