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제17대 황제
懿宗 恭皇帝 | 의종 공황제 | |
의종(懿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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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공혜효황제(昭聖恭惠孝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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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통(咸通, 860년 11월 ~ 87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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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833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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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73년 8월 15일 (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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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당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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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년 9월 13일 ~ 873년 8월 15일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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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
"주색에 빠져서 놀고 즐기는 데에 절도가 없다""당 의종은 직간하는 신하에게 화를 내고 유배보냈다."
당선종의 장남으로 환관들이 옹립했다.[1] 선종이 중흥의 의지가 있었던 것과 달리, 선종 말년부터 터져 나오는 반란 속에도 놀고 먹으며 당나라를 말아먹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직간하는 신하에게 화를 내고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
우선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영호도와 백민중을 중앙정계에서 추방시킨다.[2] 2년 뒤에는 애초에 그 자리에 없던 두종 등을 포함한 대신들을 모반죄 운운하면서 죽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아름다울 의 자 의종이다. 당나라에서는 마지막으로 황제 노릇을 한 황제. 황자 때는 그릇이 침착, 중후했으며 음률에 뛰어났다고 하니[3] 좋은 재능을 음악하고 놀고 먹으며 불교 받드는데 쓴 모양이다.[4] 당시 당나라는 마지막 불꽃처럼 강남을 중심으로 백성들에게 학정을 일삼았으며 매관 매직이 성행했다고 한다. 의종은 체격이 장대하고 훤칠했다고 한다.
의종의 딸인 동창공주가 죽자 치료하지 못한 의원들 300명의 가솔을 학살하려고 한 것을 막으려던 관료인 온장(溫暲)은 좌천되자 자살했다. 그가 유언으로 한 살아서는 때를 만나지 못했는데, 죽는다 한들 무엇이 아쉬우랴!가 의종이 어떤 인간인지를 말하는 태도이다.
당 황제의 특징인 도교 심취보다는 불교를 심취했다는 게 그나마 특징인데 아버지가 한 폐불 중단을 이어받아 복구한 것 외에는 별 것 없다. 참고로 아버지 선종은 반대로 도교에 심취했다.
3. 논찬
국가의 치세와 난세는 군주가 송사를 듣고 판단하는 것에 달려있다. 공혜황제는 교만하고 사치스러웠으며, 어질고 착한 이들은 좌천되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흉악한 내시가 정권을 잡았고, 간사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하였다. 간사한 영웅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조가 자식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완전히 사라졌다.
구당서의 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