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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1차 지명[편집]
3. 2차 지명[편집]
3.1. 지명방식[편집]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4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편집]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볼드체는 통산 WAR이 스탯티즈 기준 2 이상 되는 선수.
라운드 | ||||||||
1 | 최명진 (대전고-원광대, 내야수) | 김병철 (마산고-영남대, 외야수) | ||||||
2 | 김진철 (배명고-성균관대, 투수) | 최창수 (동대문상고-경희대, 내야수) ※ | 정의성 (강릉고-영남대, 투수) | 안희봉 (대전고-연세대, 내야수) | 조태상 (신일고-한양대, 포수) ※ | |||
3 | 하상도 (부산고-동아대, 외야수) | 서석영 (경남고-인하대, 내야수) | 박보현 (경남고-단국대, 투수) | 홍광천 (군산상고-경남대, 내야수) | 봉상철 (동산고-동국대, 내야수) | 염규빈 (경남상고-홍익대, 투수) ※ | 도명진 (동산고-한양대, 포수) | 윤현필 (진흥고-건국대, 내야수) ※ |
4 | 조용범 (마산상고-경남대, 투수) ※ | 박성균 (성남고-건국대-상무, 내야수) | 박종일 (인천고-건국대, 외야수) | 차상욱 (한서고-경성대, 내야수) | 박지영 (마산상고-경성대, 포수) | 이재형 (세광고-동국대, 내야수) | 지병호 (인천고-동국대, 투수) | 강준기 (공주고-동국대, 포수) |
5 | 장재명 (군산상고-연세대, 내야수) | 이보형 (공주고-동국대, 외야수) | 김옥일 (동아대, 외야수) | 최승우 (영흥고-영남대, 내야수) | 최철민 (마산고-동아대, 포수) | 신정균 (동대문상고-단국대, 투수) | 김종희 (경남상고-영남대, 외야수) | |
6 | 윤제성 (군산상고-고려대, 외야수) ※ | 최윤승 (인천고-원광대, 투수) | 이현호 (부산고-경희대, 투수) | 구대회 (동대문상고-동국대, 내야수) | 최상진 (세광고-성균관대, 외야수) | 김건태 (경남고-고려대, 투수) ※ | ||
7 | 패스 | 장보성 (중앙고-중앙대, 투수) ※ | 패스 | 김경호 (충암고-동국대, 외야수) | 패스 | 패스 | 패스 | 패스 |
4. 드래프트 평가[편집]
- 삼성 라이온즈 : 김재걸이라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백업 자원을 획득했다. 하지만 1997년 당시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의 규칙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해 주신 포수를 지명하는 등 암흑도 있었다. 하지만 이 해 드래프트보다는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에서 크게 잭팟이 터졌는데, 그 선수가 훗날의 국민타자.
- LG 트윈스 : 1차 지명에서 심재학을 얻어 1998년까지 중심 타선에서 활약해줬지만, 1999년에 팀 투수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해 강한 어깨힘만 보고 투수로 전향시켰다. 그러나 신통치 않은 성적을 올리고 팀과 사이가 나빠지며 현대로 트레이드. 고졸 신인타자 최초로 1억이 넘는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신일고 조현은 입단 당시까지만 해도 '제 2의 김재현' 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나 기대만큼 부흥해 주지 못했고, 해태와 한화를 거쳐 얼마 못 가 은퇴. 2차 5라운드에서 지명한 최경환은 LG 입단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하지만, 끝내 ML에 승격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와 멕시칸리그를 전전하다가 2000년 귀국해 LG의 지명을 다시 받게 된다.
- 롯데 자이언츠 : 1차 지명으로 뽑은 문동환은 롯데 대신 실업팀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고, 이에 롯데는 톱타자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에 현금 트레이드하는 조건으로 문동환을 현대 피닉스에서 퇴단시키고 롯데로 데려온다. 롯데 입단 후 1998년~1999년은 2년간 선발 에이스로 활약하였으나, 2000년 이후로는 부상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수근의 FA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 다시 하루만에 채상병과 맞트레이드되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제2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 외 2차 1라운드에서 뽑은 박현승은 쏠쏠하게 내야 유틸리티로 써먹었고, 2라운드에서 뽑슨 조경환은 현대 피닉스와 상무를 거쳐 1998년 입단해 금지어가 트레이드시키기 전까지는 중심타자로 활약해 줬다.
- 해태 타이거즈 : 드래프트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지만 고졸 우선지명에서 타이거즈 최후의 30세이브 노예를 얻었다.
5. 이모저모[편집]
- 각 구단은 이미 현대 피닉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던 16명의 선수들 중 1·2차 지명에서 14명이 지명했다. 그야말로 현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 또한 현대에게서 선수를 뺏기지 않기 위해 기존 구단들은 선수들에게 현대 못지 않은 계약금을 주게 되었고, 이는 선수들 몸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14명 중 김재걸을 제외한 13명 모두 그대로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참고로 현대와 입단 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최대 3억원에서 최소 5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계약금 5천만원도 전년도인 1994 신인지명 기준이라면 1차 지명자나 2차 1라운드 지명자 수준[3]. 여담으로 이전까지 역대 최고 계약금액은 1993년 LG에 입단한 이상훈이 받은 1억 8천8백만원.
- LG에 4라운드 지명된 강준기는 동국대 졸업 후 LG에 입단했지만 김동수, 김정민 등 기존 포수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퇴 후 공주중 감독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 해태 타이거즈의 6차 지명을 받은 추평호는 후에 KBO 심판으로 활동하게 되어 현역시절보다 더 유명세를 타게된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미국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입단한다.이후 5년후 국내로 복귀했을때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시 LG의 지명을 받아 LG에 입단한다.[3] 물론 1994 신인지명은 흉작으로 평가받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