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자 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 이집트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 갈리아 지역에 정착한 프랑크족들이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프랑크 왕국은 현지에 살던 갈리아인들과 혼혈화되고 라틴어, 천주교를 받아들이면서 라틴화되었다. 하지만 이집트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7세기에 아랍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아랍화가 진행되면서 이집트는 아랍국가가 되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 출신 십자군들과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아이유브 왕조-맘루크 왕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7차 십자군 당시 프랑스군은 루이 9세가 친정하여 잠시 이집트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루이 9세가 포로로 잡힌 이후에 철수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 출신 십자군들과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아이유브 왕조-맘루크 왕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7차 십자군 당시 프랑스군은 루이 9세가 친정하여 잠시 이집트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루이 9세가 포로로 잡힌 이후에 철수했다.
2.3. 19세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자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곳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집트도 프랑스가 영향을 줬지만, 무함마드 알리는 오스만 제국으로 독립 및 이집트를 근대화하기 위해 프랑스와 협력했다. 또한, 이집트내 유물들이 유럽 국가들로 보내지는 일이 발생되자 '프랑수아 오귀스트 페르디낭 마리에트는 이집트에서 이집트 최초 근대 박물관을 세우고 이집트의 문화재 보호에 노력했다.
19세기에 이집트는 나폴레옹이 잠시 점령했지만, 이후에 철수했고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에 이집트는 나폴레옹이 잠시 점령했지만, 이후에 철수했고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2.4. 20세기
2.5. 21세기
현재에 들어서면서 이집트와 프랑스는 교류가 많은 편이다. 이집트는 영연방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가 유엔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에 프랑코포니의 사무총장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어는 이집트에서 중요 외국어로 지정되어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이집트인들도 많이 있다. 프랑스내에도 이집토마니아도 많이 있는 편이고 프랑스는 이집트와 교류도 많이 있다. 군사교류도 많은 편이다. 이집트인들도 프랑스에 정착한 경우도 많이 있다. 이집트에도 프랑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다.
프랑스도 이집트와 관련된 학문이 많이 발달해 있다.
2010년대에 프랑스가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러시아로 보낼려던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을 이집트군으로 보냈다.
프랑스도 이집트와 관련된 학문이 많이 발달해 있다.
2010년대에 프랑스가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러시아로 보낼려던 미스트랄급 강습상륙함을 이집트군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