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한국어
| 라싸의 포탈라 궁의 역사 유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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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Historic Ensemble of the Potala Palace, Lh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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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 拉萨布达拉宫历史建筑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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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Ensemble historique du Palais du Potala, Lh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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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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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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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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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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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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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규모
3. 역사
4. 건축
포탈라 궁의 주된 재료는 흙과 나무로서 종(건축물)의 건축양식을 띄어 중국이나 서양의 화려한 궁전과 달리 외관도 뭔가 궁전보다는 요새에 가까우며, 티베트에서 성스러운 색으로 여겨지는 붉은 빛으로 칠해져 있는데다 궁전 뒤로 펼쳐지는 만년설이 덮힌 거대한 산맥의 풍광 등등, 궁전이라기보다는 뭔가 성스러운 성지의 사원같은 모습을 띄고있다. 궁은 바깥에서 보이다시피 붉은색 홍궁(紅宮)과 흰색의 백궁(白宮)으로 나뉘며, 백궁 부분이 생활공간이고 홍궁은 부처를 위한 공간이다.
포탈라궁 안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다. 다만, 달라이 라마 5세 때 지었기 때문에 모든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는 건 아니고 달라이 라마 1세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 달라이 라마 2세, 3세, 4세는 드레풍 사원(라싸)에 안장되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덤은 흙으로 봉분을 쌓아 올린 형태는 아니고, 역대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시신은 미이라 처리되어 황금으로 도배된 화려한 탑에 안장된다.
성이기 때문에 원래는 성 주위로 해자가 파이고 물이 고여 있었으나, 앞쪽은 메워져서 광장처럼 되어 버렸고 뒤쪽은 유원지가 되어 버렸다.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돌리는 오리배도 있다.
옛 사람들은 포탈라궁을 인상적인 건축물로 여겼는 지, 레(도시)의 라다크 궁이나 청더의 피서산장처럼 포탈라궁과 비슷한 건물들이 여러 개 있다.
포탈라궁 안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다. 다만, 달라이 라마 5세 때 지었기 때문에 모든 달라이 라마의 무덤들이 있는 건 아니고 달라이 라마 1세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 달라이 라마 2세, 3세, 4세는 드레풍 사원(라싸)에 안장되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덤은 흙으로 봉분을 쌓아 올린 형태는 아니고, 역대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시신은 미이라 처리되어 황금으로 도배된 화려한 탑에 안장된다.
성이기 때문에 원래는 성 주위로 해자가 파이고 물이 고여 있었으나, 앞쪽은 메워져서 광장처럼 되어 버렸고 뒤쪽은 유원지가 되어 버렸다.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돌리는 오리배도 있다.
옛 사람들은 포탈라궁을 인상적인 건축물로 여겼는 지, 레(도시)의 라다크 궁이나 청더의 피서산장처럼 포탈라궁과 비슷한 건물들이 여러 개 있다.
5. 파괴 위기
6. 티베트 독립운동과 관련
7. 달라이 라마 14세와 관련
현 14대 달라이 라마(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는 어린 시절 이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했다고 회고했다. 티베트 왕국이 존속하던 시절 포탈라궁은 달라이 라마가 겨울철에 기거하는 '겨울궁전' 역할을 하였다. 달라이 라마 14세의 자서전에 따르면 티베트의 엄혹한 겨울 날씨에다 무거운 분위기의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건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다고 하며, 그래서 빨리 여름이 되어서 꽃이 많고 햇볕도 잘 들어서 온화한 분위기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에 가기를 원했다고 기록했다.
8. 창작물에서
9. 같이보기
[1] 2000년, 2001년 등록확장[2] 2000년, 2001년 등록확장[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6]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7]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9] 원어로는 '뽀딸라'에 가깝다.[10] 한역하면 보타락가, 寶陀洛迦[11] 물론 긴 통로를 포함한 길이다.[12] 여담으로 처음 지은 궁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곳이다.[13] 비슷하게 홍위병이 파괴하려 했는데 저우언라이가 막은 곳으로 베이징의 자금성이 있다.[14] 티베트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15] 티베트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