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조 조선 왕세자 폐세자 이지 | 廢世子 李祬 | ||
왕세자 → 폐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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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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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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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
| 문성군부인 류씨(文城郡夫人 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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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폐빈 박씨(廢嬪 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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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 조선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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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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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598년 12월에 광해군과 폐비 류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광해군의 왕 즉위 후 세자에 책봉됐다.
박자흥의 딸 폐빈 박씨와 결혼한다. 그러나 세자와 세자빈은 곧 인조반정으로 인해 폐세자 / 폐빈으로 강등당하고 유배된다. 유배 생활 중 몰래 땅굴을 파고 도주를 시도하다 붙잡혔고 폐빈은 자결한다. 이후 폐세자도 자결을 명받아 자결하게 된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으나 요절하였다. (광해군 일기(12월 19일 기사)에서는 그냥 동궁 아기씨가 죽었다고만 나와서 성별을 알 수 없지만 응천일록에 동궁의 여아기(女阿只)라고 성별이 나온다. 응천일록)대신 이름 미상의 후궁에게서 현주 이아기라는 딸 하나는 있다.
박자흥의 딸 폐빈 박씨와 결혼한다. 그러나 세자와 세자빈은 곧 인조반정으로 인해 폐세자 / 폐빈으로 강등당하고 유배된다. 유배 생활 중 몰래 땅굴을 파고 도주를 시도하다 붙잡혔고 폐빈은 자결한다. 이후 폐세자도 자결을 명받아 자결하게 된다.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으나 요절하였다. (광해군 일기(12월 19일 기사)에서는 그냥 동궁 아기씨가 죽었다고만 나와서 성별을 알 수 없지만 응천일록에 동궁의 여아기(女阿只)라고 성별이 나온다. 응천일록)대신 이름 미상의 후궁에게서 현주 이아기라는 딸 하나는 있다.
3. 여담
- 많은 문헌에서 이름이 '지' 또는 '질'로 읽히는데, '질'은 한자를 다른 글자로 오인한 데서 생긴 착오이며 '지'가 맞는 발음이다.[6]
- 연려실기술의 기록(《공사견문》)에 의하면 숙종떄 봉상 판관(奉常判官) 정유제(鄭維悌)가 왕손의 예에 따라 이지에게 봉작을 추봉(追封)하자고. 주장 했지만 조정의 의논에 막혀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연려실기술 2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