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 (나바라)
Pamplona | ||
1. 개요
중세 스페인에 있었던 나바라 왕국의 수도.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의 주도인 도시다. 중세 스페인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성벽과 성당 등 당시 문화 유산이 잘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또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성지 순례객이라면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노상에 있으므로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현재 인구는 196,000명이다.
축구팬이라면 CA 오사수나의 연고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축구팬이라면 CA 오사수나의 연고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역사
도시의 이름은 로마 공화정 말기의 명장인 폼페이우스에서 유래했다. 그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군대와 싸울 때에 숙영지로 쓴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폼페이오폴리스(Pompeiopolis)로 불렸다고. 고대 후반부터 도시에는 바스크인들이 하산해 정착한 듯하다. 그들이 팜플로나를 부른 '이루냐'는 그들 언어로 '도시'라는 뜻이다.
466년, 472년에 도시는 서고트 왕국의 한 귀족에게 정복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사실상 독립을 유지한 듯 보인다. 581년 서고트 국왕 리우비길드의 군대는 바스크인들을 굴복시켰고 이 시기에 성 페르미노 주교가 비기독교도이던 40,000명의 바스크인들을 3일만에 세례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8세기 초에 서고트 왕국이 내분으로 혼란에 빠지자 팜플로나의 바스크 인들은 재차 독립했다. 711년 로데릭 왕은 도시를 공격했는데 동시에 타리크의 이슬람 군대가 지브롤터에 상륙했다.
466년, 472년에 도시는 서고트 왕국의 한 귀족에게 정복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사실상 독립을 유지한 듯 보인다. 581년 서고트 국왕 리우비길드의 군대는 바스크인들을 굴복시켰고 이 시기에 성 페르미노 주교가 비기독교도이던 40,000명의 바스크인들을 3일만에 세례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8세기 초에 서고트 왕국이 내분으로 혼란에 빠지자 팜플로나의 바스크 인들은 재차 독립했다. 711년 로데릭 왕은 도시를 공격했는데 동시에 타리크의 이슬람 군대가 지브롤터에 상륙했다.
2.1. 아랍인의 지배
2.2. 프랑크 vs 바스크
2.3. 팜플로나 왕국의 수도
프랑크인들은 824년에 바스크로 원정대를 보냈지만 2차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바스크-아랍(카시 부족)의 연합군에게 격퇴되었다. 그리고 그 지도자이던 에네코 아리스타가 왕으로 추대되어 나바라 왕국의 전신이자 바스크 민족의 첫 독립국인 팜플로나 왕국이 세워졌다. 아리스타의 어머니는 카시 아랍인과 재혼해 바스크인과 카시 부족은 종교에 상관 없이 서로 잘 지낸 듯하다. 하지만 이 시기의 팜플로나는 요새 마을에 불과했다. 924년에 한 코르도바인은 팜플로나를 '그다지 자연의 축복을 받지 못한 곳'이라고 묘사했다.
게다가 924년 7월 24일에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군대가 도시를 습격, 약탈한 후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10세기 말에는 바이킹의 침공까지 받았다. 이 도시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1세기부터다. 스페인 서북쪽 갈리시아 지방의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을 1083년에 열었는데 그 여정에 팜플로나가 위치한 것이다. 피레네 이북의 기독교도들이 몰려들며 도시는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각 3개의 구역마다 분쟁이 발생했고 1258년과 1276년에는 유혈 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1423년에 카를로스 3세는 세 구역을 하나로 합쳐서 분쟁을 끝냈다. 그리고 1512년에 스페인 군대가 팜플로나를 함락해 스페인의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924년 7월 24일에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군대가 도시를 습격, 약탈한 후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10세기 말에는 바이킹의 침공까지 받았다. 이 도시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1세기부터다. 스페인 서북쪽 갈리시아 지방의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을 1083년에 열었는데 그 여정에 팜플로나가 위치한 것이다. 피레네 이북의 기독교도들이 몰려들며 도시는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각 3개의 구역마다 분쟁이 발생했고 1258년과 1276년에는 유혈 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1423년에 카를로스 3세는 세 구역을 하나로 합쳐서 분쟁을 끝냈다. 그리고 1512년에 스페인 군대가 팜플로나를 함락해 스페인의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