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 전투 | ||
시기
| 1429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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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프랑스 파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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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프랑스의 트루아 조약 파기 및 오를레앙 전투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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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아르마냐크 프랑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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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존 패스톨프
존 탈보트 | |
병력
| 약 1,500 명[2]
| 약 5,000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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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약 100 명 전사
| 약 2500 명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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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프랑스군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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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1429년 7월 프랑스, 트루아 및 랭스 탈환.
샤를 왕세자의 왕위 계승권 확보 | |
1. 개요
Battle of Patay
Bataille de Pata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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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이에서 잉글랜드군을 무찌르는 프랑스군과 잔 다르크[4]
Bataille de Pata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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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이에서 잉글랜드군을 무찌르는 프랑스군과 잔 다르크[4]
2. 배경
오를레앙에서 잉글랜드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프랑스군은 잔 다르크를 비롯해 그녀를 지지하는 장수들이 루아르 강 이북땅을 수복하기 위한 루아르 원정을 진행하면서 프랑스 왕가의 의심을 받던 아르튀르 드 리슈몽을 회유하고 리슈몽의 협력을 얻는다. 리슈몽이 아르마냐크 프랑스를 향한 충성을 재확인한 잔 다르크를 비롯한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은 루아르 원정에 탄력을 받았고 쟈흐고, 멍, 보장등을 점령하며 북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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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저지하기 위해 존 패스톨프는 군을 이끌고 지원을 갔으나 도시들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을 돌려 존 탈보트가 위치해 있다는 파타이로 이동하여 잉글랜드의 주력군을 파타이에 집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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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저지하기 위해 존 패스톨프는 군을 이끌고 지원을 갔으나 도시들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을 돌려 존 탈보트가 위치해 있다는 파타이로 이동하여 잉글랜드의 주력군을 파타이에 집결시킨다.
3. 전개
파일:external/xenophongroup.com/patay.gif
파타이의 집결한 존 패스톨프와 존 탈보트의 잉글랜드군은 진영을 건설하고 말뚝을 박아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하였다. 잉글랜드군은 장궁병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주력이었고 프랑스군은 기사들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주력이었는데 잉글랜드군은 이 말뚝을 박으면서 프랑스의 기병대를 무력화시키고 큰 효과를 보며 아쟁쿠르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프랑스 아르마냐크군을 무찔렀다.
하지만 파타이에 집결한 잉글랜드군이 말뚝을 설치하기 이전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몇몇 병사들이 진영 근처에서 사슴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사냥에 나섰는데, 이를 프랑스 정찰병이 확인하면서 본대의 위치가 들통난 것이다.
이에 아르마냐크군은 선봉대를 먼저 출발시키고 중군과 후방의 부대가 뒤이어 출발하도록 하였다. 잉글랜드군 역시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된 것을 깨닫고는 나름대로 방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잉글랜드군은 탈보트의 약 500여명의 장궁병들을 선봉에 배치하고 대기병 말뚝들을 설치하여 프랑스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으며 패스톨프의 부대가 고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은 라 이르와 생 트라유가 선봉에 서서 약 1500여명의 중무장한 기병대를 이끌고 잉글랜드군이 위치한 파타이로 진격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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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봉이였던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의 중기병들은 잉글랜드군이 예상한 것보다 더 빠르게 난입해 들어왔다. 잉글랜드의 장궁병들은 말뚝이 설치가 완료되지 않았던 상태였으며 그동안 전투에서 학습을 해왔던 것인지 아르마냐크의 중기병들은 그나마 설치되어있던 정면의 말뚝들도 피해서 측면으로 우회해 잉글랜드의 선봉 장궁병들의 옆구리를 찌르고 일방적으로 잉글랜드 장궁병들을 학살하였다. 존 탈보트의 선봉이 궤멸당했다는 소식을 급히 전해들은 패스톨프는 병력을 이끌고 후퇴를 하였으나 추격해 들어온 아르마냐크의 중기병들은 이전에 있었던 대 참패를 되갚아주기 위해서 후퇴하는 패스톨프의 잉글랜드군 후방을 공격하여 사정없이 난도질하였고 패스톨프는 겨우 살아돌아간다.
파타이의 집결한 존 패스톨프와 존 탈보트의 잉글랜드군은 진영을 건설하고 말뚝을 박아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하였다. 잉글랜드군은 장궁병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주력이었고 프랑스군은 기사들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주력이었는데 잉글랜드군은 이 말뚝을 박으면서 프랑스의 기병대를 무력화시키고 큰 효과를 보며 아쟁쿠르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프랑스 아르마냐크군을 무찔렀다.
하지만 파타이에 집결한 잉글랜드군이 말뚝을 설치하기 이전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몇몇 병사들이 진영 근처에서 사슴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사냥에 나섰는데, 이를 프랑스 정찰병이 확인하면서 본대의 위치가 들통난 것이다.
이에 아르마냐크군은 선봉대를 먼저 출발시키고 중군과 후방의 부대가 뒤이어 출발하도록 하였다. 잉글랜드군 역시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된 것을 깨닫고는 나름대로 방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잉글랜드군은 탈보트의 약 500여명의 장궁병들을 선봉에 배치하고 대기병 말뚝들을 설치하여 프랑스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으며 패스톨프의 부대가 고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은 라 이르와 생 트라유가 선봉에 서서 약 1500여명의 중무장한 기병대를 이끌고 잉글랜드군이 위치한 파타이로 진격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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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봉이였던 아르마냐크 프랑스군의 중기병들은 잉글랜드군이 예상한 것보다 더 빠르게 난입해 들어왔다. 잉글랜드의 장궁병들은 말뚝이 설치가 완료되지 않았던 상태였으며 그동안 전투에서 학습을 해왔던 것인지 아르마냐크의 중기병들은 그나마 설치되어있던 정면의 말뚝들도 피해서 측면으로 우회해 잉글랜드의 선봉 장궁병들의 옆구리를 찌르고 일방적으로 잉글랜드 장궁병들을 학살하였다. 존 탈보트의 선봉이 궤멸당했다는 소식을 급히 전해들은 패스톨프는 병력을 이끌고 후퇴를 하였으나 추격해 들어온 아르마냐크의 중기병들은 이전에 있었던 대 참패를 되갚아주기 위해서 후퇴하는 패스톨프의 잉글랜드군 후방을 공격하여 사정없이 난도질하였고 패스톨프는 겨우 살아돌아간다.
4. 결과
[1] 다만 이 병력은 중기병 전력으로 실제 병력은 경기병과 보병을 포함하여 8천명이었다.[2] 다만 이 병력은 중기병 전력으로 실제 병력은 경기병과 보병을 포함하여 8천명이었다.[3] 르와레 주에 있는 소읍으로 인구는 2100명 가량(2015)이며 프랑스어로는 pa'te(파테)라고 읽는다[4] 중앙에 있는, 흰 갑옷과 망토를 입고 깃발을 들었으며 후광이 그려진 인물이 잔 다르크일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서의 묘사와 달리 실제 잔 다르크는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전투에 참전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5] 나중에 탈 보트는 협상을 통해서 풀려났고 백년전쟁 동안 전투에 여러번 참전했다.[6] 당시 잉글랜드군은 파타이 전투 전에 오를레앙과 누아르 강 계곡에서 전투를 치른터라 이 피해까지 포함하면 병력을 1만 가까이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