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루도우푸 바테츠쿠
(Rodolfo Barteczko)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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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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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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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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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FC (1930~1932)
포르사 이 루스-RS (1932) 나시오날 (1933~1934) 보타포구 FR (1934~1940)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41) 플루미넨시 FC (1941) 보타포구 FR (1942~1943) |
국가대표
| 34경기 / 11골 (1930~1942)
|
1. 생애
1.1. 클럽
브라질 식 이름인 파체스쿠로 더 잘 알려진 루도우푸 바테츠쿠는 폴란드인의 피가 흘렀다.
데뷔는 고향 쿠리치바의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 했고, 나시오날과 보타포구에서 사랑받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1933년에 나시오날에 입단하자마자 도밍구스 다 기아와 함께 파체스쿠의 커리어 사상 첫 우승을 맛보았으며, 연속 우승 후에 브라질로 돌아갔다.
새로운 무대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의 보타포구. 보타포구는 당시 주 리그에서 카르발류 레이치 등을 앞세워 4연속 우승을 하던 강팀이었지만 파체스쿠는 1935년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그 이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주로 보타포구에서 활약하였다.
데뷔는 고향 쿠리치바의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 했고, 나시오날과 보타포구에서 사랑받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1933년에 나시오날에 입단하자마자 도밍구스 다 기아와 함께 파체스쿠의 커리어 사상 첫 우승을 맛보았으며, 연속 우승 후에 브라질로 돌아갔다.
새로운 무대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의 보타포구. 보타포구는 당시 주 리그에서 카르발류 레이치 등을 앞세워 4연속 우승을 하던 강팀이었지만 파체스쿠는 1935년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그 이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주로 보타포구에서 활약하였다.
1.2. 국가대표팀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3]
30년대 중반 브라질 축구계에서 가장 완성된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라는 평가가 있다. 드리블과 골 결정력이 뛰어나 좋은 공격수로 활약했다.
3. 여담[4]
- 1941년, 파체스쿠가 아직 보타포구 소속일 때 친선경기에서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의 유니폼을 입고 참가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