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내용
책 이름에서 '토원(兔園)'[2]은 이운이 소유한 정원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고대의 도서 목록에는 중구난방으로 '토원책(兔園策)', '토원책(兔園冊)', '토원책부(兔園冊府)', '토원책자(兔園冊子)' 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됐다.
서당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라고는 하지만 고급 과정에 속하는 교재였는데, 과거 시험에 대비하는 수험용 참고 서적같은 성격을 띠었다. 당나라 시대 과거 시험 중 하나인 상과(常科)에서 출제되는 '시사, 정치 문제를 묻는 시험 문제'[3]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의 형식을 취했다. 전체 문장이 문답형으로 쌍으로 짝을 지어 이루어진 대구(對句) 형식이며 변려문(騈儷文)[4] 형식으로 쓰여졌다.
원나라 시대 이후로는 사라져서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나라 때 들어와 막고굴에서 책의 잔편(殘片) 다섯 조각이 발견되어서, 현재는 서문 전체와 제1권의 내용 일부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원래 전체 서적 규모의 약 1/10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와 현대(당나라 시대)의 인문, 사회, 자연의 여러가지 다양한 문물과 시사, 상식, 정치 등에 관한 지식을 실었고, 유교 경전 및 역사서를 인용하여 설명을 붙였다. 통속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여 이해하기 쉬웠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토원책부≫는 내용이 천박하다 하여 무시하였기 때문에, 원래 이름보다도 ≪토원책자(兔園冊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당시 중국의 교육 상황과 과거제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측면들을 살펴볼수 있는 1차 자료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서당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라고는 하지만 고급 과정에 속하는 교재였는데, 과거 시험에 대비하는 수험용 참고 서적같은 성격을 띠었다. 당나라 시대 과거 시험 중 하나인 상과(常科)에서 출제되는 '시사, 정치 문제를 묻는 시험 문제'[3]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의 형식을 취했다. 전체 문장이 문답형으로 쌍으로 짝을 지어 이루어진 대구(對句) 형식이며 변려문(騈儷文)[4] 형식으로 쓰여졌다.
원나라 시대 이후로는 사라져서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나라 때 들어와 막고굴에서 책의 잔편(殘片) 다섯 조각이 발견되어서, 현재는 서문 전체와 제1권의 내용 일부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원래 전체 서적 규모의 약 1/10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와 현대(당나라 시대)의 인문, 사회, 자연의 여러가지 다양한 문물과 시사, 상식, 정치 등에 관한 지식을 실었고, 유교 경전 및 역사서를 인용하여 설명을 붙였다. 통속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여 이해하기 쉬웠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토원책부≫는 내용이 천박하다 하여 무시하였기 때문에, 원래 이름보다도 ≪토원책자(兔園冊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당시 중국의 교육 상황과 과거제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측면들을 살펴볼수 있는 1차 자료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