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고대부터 태국과 미얀마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인도의 영향으로 불교(상좌부 불교)가 전파되었고 데바나가리 문자에서 파생된 버마 문자와 태국 문자가 각각 미얀마어와 태국어에 사용되었다. 그외에도 버마인과 태국인들의 조상이 중국 남부로 이주하면서 왕국을 세웠다. 양국은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동시에 국민성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어서 태국은 미얀마에게 '거칠고 공격적'이라 했으며 미얀마 역시 태국을 '거만하다'고 각각 무시했다.
미얀마는 왕조때부터 태국과 전쟁을 자주 치렀다. 버간 왕조 당시 영토를 확장하면서 태국과의 전쟁이 있었다. 당시 태국측에서도 버간 왕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게다가 아유타야 왕조는 미얀마의 침략을 받는 등 양국은 전쟁을 수없이 치뤄야 했다.
미얀마의 여러 왕조가 태국을 공격하는 동안, 18세기말에 영국이 미얀마를 공격했고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설치하면서 갈등이 빚어질 뻔 하다가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을 완충국으로 삼는다고 합의하면서 미얀마와 달리 태국은 식민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다.
미얀마는 왕조때부터 태국과 전쟁을 자주 치렀다. 버간 왕조 당시 영토를 확장하면서 태국과의 전쟁이 있었다. 당시 태국측에서도 버간 왕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게다가 아유타야 왕조는 미얀마의 침략을 받는 등 양국은 전쟁을 수없이 치뤄야 했다.
미얀마의 여러 왕조가 태국을 공격하는 동안, 18세기말에 영국이 미얀마를 공격했고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설치하면서 갈등이 빚어질 뻔 하다가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을 완충국으로 삼는다고 합의하면서 미얀마와 달리 태국은 식민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