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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돈화문
昌德宮 敦化門 | |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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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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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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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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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조선시대, 1412년 창건, 1608년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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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름
萬物竝育而不相害
만물은 함께 커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道竝行而不相悖
도(道)는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아서
小德川流 大德敦化
작은 덕은 시내처럼 흐르고 큰 덕은 두텁게 감화시키니
此天地之所以爲大也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
《중용》 30장 中에서..
3. 역사
태종 때에 창덕궁의 내부 전각들을 다 지은 후에야 궁의 경계를 확정하여 1412년(태종 12년)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창덕궁 전체가 불에 탔으나 궁의 외곽에 있는 돈화문이 탔는 지는 모른다.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저 때 화재를 입었다가 1608년(선조 41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다만, 1598년 5월 9일 자 《선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돈화문으로 멀쩡히 남았던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건물의 양식이 조선 전기와는 꽤 달라서 어느 쪽이 맞다고 확언하긴 힘들다.[1] 어쨌든 임란 이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에 창덕궁 전체가 불에 탔으나 궁의 외곽에 있는 돈화문이 탔는 지는 모른다.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저 때 화재를 입었다가 1608년(선조 41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다만, 1598년 5월 9일 자 《선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돈화문으로 멀쩡히 남았던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건물의 양식이 조선 전기와는 꽤 달라서 어느 쪽이 맞다고 확언하긴 힘들다.[1] 어쨌든 임란 이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 원래는 장대석(長台石)의 기단과 층계가 있었다. 이는 19세기 초에 그린 《동궐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순종 즉위 후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제가 도로 표면 높이에 맞춰 묻어버렸다. 이후 약 90년 동안 돈화문 바로 앞까지 도로였지만, 1990년대 중반 대대적인 창덕궁 복원사업에 맞춰 발굴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이가 짧아 위엄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2020년에 걸친 율곡로의 높이를 돈화문 월대 높이로 낮추고 막힌 월대를 트는 공사를 계속 진행하여 2020. 12월 완성됐다. 월대가 탁 트일 때까지 약 1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5. 여담
[1] 저 실록에 나온 돈화문이 중층 정식 건물이 아닌, 임시로 세운 문을 일컬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