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문 터 추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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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이름
'건양(建陽)' 뜻은 직역하면 '양(陽)을 세운다(建)'이다. '양(陽)'은 볕, 해를 의미하며 방위로는 동쪽을 가리킨다. 즉, 건양문은 '동쪽 문'이란 뜻이다.
3. 역사
언제 처음 지었는지 모른다. 다만, 태종 때 창덕궁을 창건하면서 건립한 듯 하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다 1475년(성종 6년)에 왕명으로 예문관대제학 서거정이 건양문이란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에 궁궐 안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해서 사용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궁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름 구분을 엄격하게 했다. 그래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공적으로 오갈 때는 반드시 건양문을 거쳐야 했으며, 일종의 통행 허가패인 부신(符信)이 있어야만 드나들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재건했다. 영조와 정조는 건양문에서 보초서는 군사를 늘리고 문 옆에 숙위소를 두었다.###[1]
지금은 없다. 언제 철거했는지는 모르나,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만든《동궐도형》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걸 보아 그 때까지는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일제 때 헌 듯 하다.
조선시대에 궁궐 안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해서 사용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궁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름 구분을 엄격하게 했다. 그래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공적으로 오갈 때는 반드시 건양문을 거쳐야 했으며, 일종의 통행 허가패인 부신(符信)이 있어야만 드나들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재건했다. 영조와 정조는 건양문에서 보초서는 군사를 늘리고 문 옆에 숙위소를 두었다.###[1]
지금은 없다. 언제 철거했는지는 모르나,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만든《동궐도형》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걸 보아 그 때까지는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일제 때 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