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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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궁궐지》에 의하면 ‘관덕정은 영화당의 동쪽 잠원봉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잠단(蠶壇)이 있는데 바로 성종 3년(1472)에 채상단(採桑壇)을 옛터에 지었다. 공혜왕후 한씨가 항상 잠례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아 조선 전기에는 누에 관련 행사를 하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42년(인조 20년)에 그 자리에 관덕정을 세웠다. 처음에는 취미정(翠微亭)이라 부르다가 1664년(현종 5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위에 언급했듯 활쏘는 곳으로 주로 쓰였으며, 이외에도 관덕정 앞 빈터에서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살아남았다. 다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42년(인조 20년)에 그 자리에 관덕정을 세웠다. 처음에는 취미정(翠微亭)이라 부르다가 1664년(현종 5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위에 언급했듯 활쏘는 곳으로 주로 쓰였으며, 이외에도 관덕정 앞 빈터에서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살아남았다. 다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