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나라 13대 국군
효후 孝侯 | |||
희(姬)
| |||
진(晉)
| |||
평(平)
| |||
아버지
| 진소후(晉昭侯) 희백(姬伯)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24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38년 ~ 기원전 724년
| |
1. 개요
2. 생애 [1]
진 소후 6년(기원전 739년)[2], 진 소후가 대부 반보(潘父)에게 죽고 곡옥과 내통한 반보가 곡옥환숙(曲沃桓叔)을 맞이했으나 진나라 사람들은 곡옥환숙을 내쫓고는 희평을 진후로 모셨다. 그가 바로 진 효후다. 그는 반보를 주살했다.[3]
진 효후 15년(기원전 724년), 곡옥환숙의 아들인 곡옥장백(曲沃莊伯)이 진의 도성인 익(翼)을 쳐서 진 효후를 살해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은 곡옥장백에게도 반발해 곡옥장백을 내쫓고 그 아우인 희극(姬郤)을 군주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 악후다.
진 효후 15년(기원전 724년), 곡옥환숙의 아들인 곡옥장백(曲沃莊伯)이 진의 도성인 익(翼)을 쳐서 진 효후를 살해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은 곡옥장백에게도 반발해 곡옥장백을 내쫓고 그 아우인 희극(姬郤)을 군주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 악후다.
[1] 이후에 진나라 군주들은 비명 횡사를 하게 되는데, 진 효후의 아우인 진악후 빼고 지속된다.[2] 당시 년도 계산을 전 군주 즉위 말년으로 취급해서 기원전 739년 즉위가 아닌 다음해인 기원전 738년이 진 효후 원년으로 친다.[3] 당연한 게, 그는 국가의 위기를 자초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죽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