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나라 6대 국군
정후 靖侯 | |||
희(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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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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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宜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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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보(喜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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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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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8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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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858년 ~ 기원전 8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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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치세
진여후 원년(기원전 858년), 아버지 진여후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진정후 17년(기원전 842년), 주여왕[3]이 폭정을 자행해 국인폭동이 일어나 주정공과 소목공이 나라를 대신 다스리는 공화 시대 때 군주가 되었다.[4][5]
진정후 18년(기원전 841년), 진정후는 사망하였고, 아들인 희사도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바로 진희후다.
진정후 17년(기원전 842년), 주여왕[3]이 폭정을 자행해 국인폭동이 일어나 주정공과 소목공이 나라를 대신 다스리는 공화 시대 때 군주가 되었다.[4][5]
진정후 18년(기원전 841년), 진정후는 사망하였고, 아들인 희사도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바로 진희후다.
[1] 희북마(姬僰馬)라 하기도 한다[2] 희북마(姬僰馬)라 하기도 한다[3] 주나라의 여자왕 즉 여왕이 아니라 여라는 시호를 받은 왕이다.[4] 일설에는 공나라 백작인 화가 간왕(干王)을 자칭해 나라를 다스렸다는 말이 있다.[5] 이것이 공화국의 유래인 공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