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3대 국군
문공 文公 | |||
영(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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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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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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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진양공 영개(嬴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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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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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65년 ~ 기원전 7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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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견수와 위수 땅에 성읍을 세우다
진 문공 원년(기원전 765년), 진 양공이 죽고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진 문공은 서수궁(西垂宮)에 거주했다.
진 문공 3년(기원전 763년), 진 문공은 7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동쪽 변경에서 사냥했다.
진 문공 4년(기원전 762년), 진 문공은 견수와 위수에 도착해 회합하면서 진 문공이 말했다. "옛날에 주 왕실이 이 땅을 과인의 선조이신 진영(진비자)께 내리신 봉읍인데, 결국에는 제후가 되었소." 진 문공은 이 땅에서 일어날 운명에 대해 점을 치게 했는데, 그 점이 길하게 나왔다. 진 문공은 이 땅에 성읍을 세웠다.
진 문공 3년(기원전 763년), 진 문공은 7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동쪽 변경에서 사냥했다.
진 문공 4년(기원전 762년), 진 문공은 견수와 위수에 도착해 회합하면서 진 문공이 말했다. "옛날에 주 왕실이 이 땅을 과인의 선조이신 진영(진비자)께 내리신 봉읍인데, 결국에는 제후가 되었소." 진 문공은 이 땅에서 일어날 운명에 대해 점을 치게 했는데, 그 점이 길하게 나왔다. 진 문공은 이 땅에 성읍을 세웠다.
3. 진 문공의 꿈
진 문공 10년(기원전 756년), 진 문공은 꿈을 꾸었는데, 한마리의 노란 뱀이 나와 그 몸이 하늘 위아래로 늘어뜨려 땅끝까지 닿았으며, 주둥이는 바로 부성 일대의 밭에 이르렀다. 진 문공은 꿈에서 깨어난 뒤 사돈에게 그 꿈에 대해 물었다. 사돈이 대답했다. "이것은 천제의 상징인데, 청컨대 군후께서는 제사를 지내시지요." 진 문공은 명을 내려 부치에 제단을 세우고, 소, 말, 양을 잡아 백제에게 제사했다.
4. 사관을 두어 교화에 힘쓰고 서융을 치다
진 문공 13년(기원전 753년), 진 문공은 사관을 두어 큰 일을 기록하게 했으며, 백성들을 교화시켰다.[2]
진 문공 16년(기원전 750년), 진 문공은 병사들을 보내 서융을 쳤는데, 서융의 병사들은 패하여 달아났다. 그리하여 주나라의 유민들을 거두어 들이고, 기산 지방을 차지했으며, 그 동쪽을 주나라 천자에게 바쳤다.
진 문공 16년(기원전 750년), 진 문공은 병사들을 보내 서융을 쳤는데, 서융의 병사들은 패하여 달아났다. 그리하여 주나라의 유민들을 거두어 들이고, 기산 지방을 차지했으며, 그 동쪽을 주나라 천자에게 바쳤다.
5. 진 문공이 겪은 신비한 일들
진 문공 19년(기원전 747년), 진 문공은 진창 지방에서 사냥을 했는데, 북판성을 거쳐갈 때 진보라고 하는 돌을 얻었는데, 그것은 그 색은 얼굴과 같았으며, 형상은 간과 같은 모습이었다. 진 문공은 북판성에 진보사를 건설했고, 거기서 가축을 잡아 제사했다. 진보사의 동남쪽에서 마른 하늘임에도 벼락치는 소리가 들렸고, 꿩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진 문공은 거기에 신이 있다고 여겨, 그 신을 계명신이라고 하였다.
진 문공 20년(기원전 746년), 진 문공은 삼족을 죽이는 형벌을 만들었다.[3]
진 문공 27년(기원전 739년), 진나라의 무도군 고도현 남산에서 한그루의 개오동나무를 베려 했는데, 그것을 베려 할 때마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그러나 진 문공이 친히 오자 그 나무가 베어졌다고 한다. 그 원인은 거기에 귀신이 붙은 탓이라 했다. 그리고 진 문공이 와서 그 나무가 배인 뒤 소 한마리가 나타나 달아났으므로, 후일 그곳에 사당을 세워 그 소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진 문공 20년(기원전 746년), 진 문공은 삼족을 죽이는 형벌을 만들었다.[3]
진 문공 27년(기원전 739년), 진나라의 무도군 고도현 남산에서 한그루의 개오동나무를 베려 했는데, 그것을 베려 할 때마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그러나 진 문공이 친히 오자 그 나무가 베어졌다고 한다. 그 원인은 거기에 귀신이 붙은 탓이라 했다. 그리고 진 문공이 와서 그 나무가 배인 뒤 소 한마리가 나타나 달아났으므로, 후일 그곳에 사당을 세워 그 소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6. 진 문공의 최후
진 문공 48년(기원전 718년), 태자가 죽자, 그 시호를 정(靜)으로 해서, 그가 진정공(秦靜公)이 된다. 진 문공은 진 정공의 아들인 자신의 손자에게 자신의 뒤를 잇게했다.
진 문공 50년(기원전 716년), 진 문공이 죽어 서산에 안장되었다. 진 문공이 죽은 뒤 그 손자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진 헌공이다.
진 문공 50년(기원전 716년), 진 문공이 죽어 서산에 안장되었다. 진 문공이 죽은 뒤 그 손자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진 헌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