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종의 왕자
진남군 鎭南君 | ||
진남정(鎭南正) → 진남군(鎭南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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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夷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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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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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終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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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보(原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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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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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숙의 이씨(淑儀 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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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의춘군부인 의령 남씨(宜寧 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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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4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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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경기도 용인시 역북리 구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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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
1. 개요
2. 생애
1425년(세종 7년)에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에 봉해졌고# 1430년(세종 12년)에는 원윤으로 승격되었다. 그 해에 세종이 왕족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종학의 관리직인 유사(有司)에 임명되어 종친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지를 감찰했다. 1442년(세종 24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전주에 있는 회안대군의 서자의 집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왔다.# 1444년(세종 26년)에는 명선대부 진남정에 봉해졌고#, 1453년(단종 1년)에는 정의대부 진남군으로 승격했다.#
1466년(세조 12년)에는 세조의 특명으로 사옹원[3]과 장원서[4]의 책임자인 제조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품계가 숭헌대부(崇憲大夫)로 높아졌으며 그 다음해에는 가덕대부로 승격하고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으로 책록되었다.##
1466년(세조 12년)에는 세조의 특명으로 사옹원[3]과 장원서[4]의 책임자인 제조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품계가 숭헌대부(崇憲大夫)로 높아졌으며 그 다음해에는 가덕대부로 승격하고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으로 책록되었다.##
3. 사후
4. 여담
- 평소에 책읽고 글쓰는 것을 좋아했으며 항상 근검과 청렴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5. 가족과 후손
[1]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및 전주 이씨 진남군파 종중회에서는 1393년 2월 15일 생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성종실록》 1470년 11월 27일 자의 진남군 졸기를 보면 1406년 생으로 나와 있다.(정확히는 향년 65세라고 적었다. 이를 역으로 계산하면 1406년 생이란 결론이 나온다.)#[2]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및 전주 이씨 진남군파 종중회에서는 1393년 2월 15일 생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성종실록》 1470년 11월 27일 자의 진남군 졸기를 보면 1406년 생으로 나와 있다.(정확히는 향년 65세라고 적었다. 이를 역으로 계산하면 1406년 생이란 결론이 나온다.)#[3] 司饔院. 왕의 식사나 궁중의 음식 공급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4] 掌苑署. 궁궐에 있는 정원의 꽃과 과일 나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5] 음력 11월 27일.[6] 세는나이 65세.[7] 翊戴功臣. 남이의 옥사를 평정한 공로로 신하 37명에게 내린 공신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