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2. 근대 이전 중국계 이주민
2.1. 역사적 인물
기자: 기자조선의 시조로 상나라의 왕족이라고 한다.현재는 인정되지 않는다.- 위만: 위만조선의 시조로 연나라 출신이라고 한다. 단, 조선계 이주민이라는 주장도 있다.
- 동수: 전연의 인물로 모용인의 쿠데타가 실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했다.
- 박암 : 오월국 출신으로 고려에 귀순하였다.
- 추언규 : 위의 박암과 동일.
- 쌍철(雙哲): 쌍기의 아버지. 후주에서 시어(侍御) 청주수(淸州守)를 지내다가 귀화했다.
- 왕삼석(?): 고려 말의 간신. 남만 출신의 원나라인으로 고려에 귀화했다. 운남성 혹은 동남아시아 지역 출신으로 추정된다.
- 두사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가한 명나라의 장수. 전쟁이 끝난 후 귀화했다.
2.2. 중국 유래 본관
- 광주 노씨: 시조는 당나라에서 벼슬하다 건너왔는데 그 이전에는 무엇을 하였는지 상세한것은 불명이다. 이 본관에서 나온 유명인물로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있다.
- 강릉 유씨: 북송시대에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내던 유전(劉筌)이 고려에 귀화했다.[10] 시조는 유승비(劉承備)[11]인데, 족보의 대시조는 한고제 유방이고 중간엔 광무제 유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로 건너온 유전이라는 사람이 광무제 유수의 증손이고 동한 3대 황제인 효장황제의 아들이며, 안제의 부친인 청하효왕 유경의 28세손이다. 한고제 유방을 기준으로 치면 유방의 40세손이다.
고려로 귀화하고 처음에 정착한 곳은 각주에 전술했듯 강릉이 아닌 현 포항시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유승비의 증손 유창(劉敞)이 조선개국2등공신에 책록되어 옥천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삼게 되었다.
유재석, 유옥우, 유대운, 유정복, 유남규, 유민상(정치인)[12], 유지태, 스티브 유, 에반(유호석), 유지애, 유상무, 유승민, 유극량, 데프콘(유대준), 유준상, 유인나, 영재(유영재) 등이 이 성씨를 쓴다. - 회산 감씨: 고려 공민왕의 왕후인 노국대장공주가 시집올때 원나라 측에서 파견한 한림학사 감둥리가 시조로 공민왕에게서 규(揆) 이름을 하사받아 이후에는 감규로 불리웠으나 이후 부정부패가 발각되어 이름을 회수당하고 천민으로 강등당한 뒤 다시 이전 이름인 감둥리로 돌아갔다.[13]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 태조 이성계가 인재발굴을 윌해 추진한 사면령에 가까스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이후 16세손 감철(甘喆)이 북벌을 중지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함받은 뒤로 본관을 회산으로 한다고 하지만 이게 회산 감씨 문중에서 조상의 공을 위작한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14] 조선이 망하고 나서 신분제도가 폐지되는 시기에 조상들의 족보를 회산 감씨 후손들이 위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현대 중국계 한국인
스포츠 선수들 중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한국으로 건너온 탁구선수들이 많다. 부모나 본인이 화교가 아닌 경우만 서술.
- 곽방방: 탁구선수.
- 김철욱: 농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우띠롱.
- 당예서: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탕나(唐娜).
- 석하정: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스레이(石磊).
- 전지희: 탁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톈민후이(田民惠)
- 안병훈: 골프선수. 어머니가 중국 탁구선수인 쟈오즈민(焦志敏).
4. 화교 출신 한국인
중화민국(대만) 국적자, 즉 재한 화교 가운데 2천명 가량이 2011년까지 귀화를 했다. 1980년대까지는 제한 등으로 거의 못 하다가 제한이 풀리면서 조금씩 늘었다. 한국 최초의 귀화자도 화교 출신이다. 특히 재한 화교 중 한국에서 태어났고, 정체성은 한국인이나 여러 사회적 제약 등으로 귀화를 못했던 화교들인 한화(韓華, Korea Born Chinese)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 공상정: 여자 쇼트트랙 선수.
- 이연복: 요리사.
- 주현미: 가수.
- 하희라: 배우.
- 후인정: 대만계 前 배구선수. 수원 후씨의 시조가 되었고,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의 귀화 선수다. 현재는 경기대학교 배구부 코치로 있다.
5. 둘러보기
[1] 특히 중국에서 특정 왕조가 멸망할 때마다 그 왕조의 구 기득권 세력이 한민족계 국가를 포함한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국의 마지막 통일왕조인 청나라의 지배민족이었던 만주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2] ex -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전주 이씨, 덕수 이씨, 밀양 박씨 등등등.[3] 공자의 제자인 공문십철 중 하나인 민자건의 후손이다.[4] 1082년(문종 36)에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현 포항시)에 정착.[5] 유전의 9세손이고,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복야로 치사(致仕)했다.[6] 1921~2000. 前 법제처장이자 前 유신정우회 국회의원.[7] 감둥리에게 공민왕이 하사한 이름을 풀어보면 임금 왕(王)+ 북방 계(癸)가 합쳐진 것으로 북쪽의 왕으로 풀이되는데, 당시 시대상황으로 고려는 거의 반쯤 원나라 방계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고려 왕족은 원나라 황가의 일부에 불과했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통혼이 서로 이루어져 사실상 방계 가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방계의 득세를 경계하고자 일종의 감시를 위한 인물로 감둥리가 파견되었기에 공민왕이 원나라 측의 경계를 풀고 감둥리의 환심을 사고자 원나라 사람인 감둥리에게 북방의 왕이라는 뜻을 지닌 규(揆)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으로 사학계에서 보고있다.[8] 첫째. 감철이 올랐다고 하는 금자광록대부는 고려시대의 종1품∼종2품 문산계로서 이후 1356년(공민왕 5년) 금자광록대부로 바뀌면서 종1품 상계가 되었으며, 1362년에 폐지되었다. 둘째.회산 감씨 문중에서 주장하는 16세손인 감철이 공을 세웠을 수도 있으나 조선시대에 되어서야 가능했을텐데 조선에는 없는 벼슬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되지않는다. 셋째.엄연히 다른 회산군(檜山君)이 존재하는데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염(李恬),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성종(成宗)의 다섯 째 아들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淑儀洪氏)인 조선시대 왕족으로 그것도 중종의 친동생인데, 회산 감씨 문중에서 조선시대에 자신들의 문중에 회산군(檜山君) 이 있다고 했다면 당장에 역모죄로 일족이 멸족되었을 것이다.[9] 공자의 제자인 공문십철 중 하나인 민자건의 후손이다.[10] 1082년(문종 36)에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현 포항시)에 정착.[11] 유전의 9세손이고,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복야로 치사(致仕)했다.[12] 1921~2000. 前 법제처장이자 前 유신정우회 국회의원.[13] 감둥리에게 공민왕이 하사한 이름을 풀어보면 임금 왕(王)+ 북방 계(癸)가 합쳐진 것으로 북쪽의 왕으로 풀이되는데, 당시 시대상황으로 고려는 거의 반쯤 원나라 방계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고려 왕족은 원나라 황가의 일부에 불과했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통혼이 서로 이루어져 사실상 방계 가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방계의 득세를 경계하고자 일종의 감시를 위한 인물로 감둥리가 파견되었기에 공민왕이 원나라 측의 경계를 풀고 감둥리의 환심을 사고자 원나라 사람인 감둥리에게 북방의 왕이라는 뜻을 지닌 규(揆)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으로 사학계에서 보고있다.[14] 첫째. 감철이 올랐다고 하는 금자광록대부는 고려시대의 종1품∼종2품 문산계로서 이후 1356년(공민왕 5년) 금자광록대부로 바뀌면서 종1품 상계가 되었으며, 1362년에 폐지되었다. 둘째.회산 감씨 문중에서 주장하는 16세손인 감철이 공을 세웠을 수도 있으나 조선시대에 되어서야 가능했을텐데 조선에는 없는 벼슬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되지않는다. 셋째.엄연히 다른 회산군(檜山君)이 존재하는데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염(李恬),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성종(成宗)의 다섯 째 아들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淑儀洪氏)인 조선시대 왕족으로 그것도 중종의 친동생인데, 회산 감씨 문중에서 조선시대에 자신들의 문중에 회산군(檜山君) 이 있다고 했다면 당장에 역모죄로 일족이 멸족되었을 것이다.[15] 남녀부 최초의 귀화선수는 후술했듯 후인정이다.[16] 남녀부 최초의 귀화선수는 후술했듯 후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