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시대에 있었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연표입니다.
- 인물들의 나이는 한국식으로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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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1세]] (1714~1727, 14년간)2. [[조지 2세]] (1727~1760, 34년간)
2.1.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시작2.2.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종료2.3.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발발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1740 ~ 1748) 종료2.5. [[7년 전쟁]](1756 ~ 1763)2.6. 1757, 인도 식민지화(1757 ~ 1947) 시작
3. [[조지 3세]] (1760~1820, 59년 3개월)3.1. [[7년 전쟁]](1756 ~ 1763) 종료3.2. 1763, 캐나다의 식민지화(1763 ~ 1982) 시작3.3.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시작3.4.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종료3.5. 1775, 미국의 독립3.6. 1787, 호주의 식민지화(1787 ~ 1986) 시작3.7.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시작3.8. 1789, 프랑스 혁명 시작3.9.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종료3.10. 제1차 프랑스 혁명전쟁(1792 ~ 1798, 7년간) 시작
4. [[조지 4세]] (1820~1830, 11년): [[조지 3세]]의 첫째 아들3.10.1. 1792, [[뉴욕증권거래소]]의 시작
3.11. 1794, 프랑스 혁명의 종료(테르미도르 반동)3.12. 제1차 대프랑스 혁명전쟁의 끝(1798)3.13.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시작(1799 ~ 1801)3.14.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끝3.14.1. 1803, 미국의 [[루이지애나 구입]]
3.15. 1804,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37세)3.15.1. 제3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5)3.15.2. 제9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06 ~ 1812) 시작3.15.3. 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6 ~ 1807)의 시작3.15.4. 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6 ~ 1807)의 끝3.15.5. 제5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9 ~ 1812)의 시작
3.16. 1811 ~ 1820, 10년, [[조지 4세]]의 섭정시기(The Regency)4.1. 그리스 독립전쟁(1821 ~ 1829)의 시작4.2. 1826, 말레이시아의 식민지화(1826 ~ 1957) 시작4.3. 제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27 ~ 1829)의 시작
5. [[윌리엄 4세]] (1830~1837, 8년): [[조지 3세]]의 셋째 아들4.3.1. 1827, [[나바리노 해전]]
4.4. 제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27 ~ 1829)의 종료4.4.1. 그리스 독립전쟁(1821 ~ 1829)의 종료
4.5. 1830,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식민지 총독, [[무함마드 알리]]의 반란4.6. 1830, [[벨기에]]의 독립1. 조지 1세 (1714~1727, 14년간)
- 1714
- 8월 1일
- 1715
- 1716
- 1717
- 1718
- 1719
- 1720
1.1. 1721, 책임내각제 시작
1.1.1. 1721, 러시아 제국의 등장
2. 조지 2세 (1727~1760, 34년간)
- 1728
- 1729
- 1731
- 1732
- 1733
- 1734
2.1.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시작
- 1735
- 1736
- 1737
- 1738
- 3월: 로버트 젱킨스, 영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되어 스페인 해군이 자신에게 가한 위해에 대해 증언함. 이후 영국 의회는 국왕에게 스페인에게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할 것을 권고함.
2.2.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종료
러시아 제국 (+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승리.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니시[1]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크림 반도 북부를 획득하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오스만 제국 영토 내의 기독교도에 대한 보호자로 인정받았다. 이 전투 이후로는 오스만은 더이상 러시아를 이기지 못하기 시작했다.
- 1739
- 7월 10일: 조지 2세, 스페인의 거듭된 사죄 및 배상 거절로 인해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해군 위원회에게 스페인을 무력으로 응징할 것을 지시함.
- 10월 22일: 영국 해군이 베네수엘라의 주요 항구인 라 과이라를 포격함.
- 10월 23일: 영국, 스페인에 선전포고함. 이리하여 '젱킨스의 귀 전쟁' 발발.
2.3.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발발
- 1740
- 10월 28일
- 12월 16일: 프리드리히 대왕, 슐레지엔 기습 침공.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발발.
- 1741
- 4월 10일: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몰비츠 전투를 치름. 대왕 본인은 인생 첫 전투에서 실책을 연발했지만, 부지휘관 쿠르트 크리스토프 폰 슈베린의 활약 덕분에 가까스로 승리함.
- 12월 6일
- 1742
- 2월 16일: 2대 총리, 윌밍컨 백작 '스펜서 컴프턴'(1년 136일, 휘그당) 임기 시작
- 6월 11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브레슬라우 밀약 체결. 프로이센은 슐레지엔 지배권을 인정받는 대신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함.
- 1743
- 1744
- 1745
- 3월: 오스트리아와 작센 연합군 59.000명이 슐레지엔을 전격 침공함.
- 11월: 스코틀랜드를 석권한 자코바이트 반란군이 스코틀랜드 남부 국경을 넘어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칼라일, 맨체스터, 더비로 진군함.그러나 영국인들의 호응이 거의 없고 진압군이 출격하자, 반군은 곧 스코틀랜드로 후퇴함.
- 11월 23일: 프로이센군, 헨넬스도르프 전투에서 슐레지엔으로 침입하던 오스트리아-작센 연합군을 기습하여 승리함.
- 12월 15일: 프로이센군, 케셀스도르프 전투에서 작센군을 섬멸하고 사흘 뒤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을 공략함.
- 12월 25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드레스덴 조약 체결.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권을 인정하고,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 행위를 종식하기로 합의함.
- 1746
- 1월 30일: 영국군, 에딘버러를 탈환하고 자코바이트 반란군을 추격함.
- 4월 16일: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오거스터스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컬로든 전투에서 자코바이트 반란군을 섬멸함. 이후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프랑스로 망명하고, 컴벌랜드 공작은 석달 동안 자코바이트와 연관된 스코틀랜드인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해 '도살자 컴벌랜드'라는 별칭으로 불림.
- 1747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1740 ~ 1748) 종료
- 1748
- 5월 7일: 모리스 드 삭스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마스트리흐트를 공략함.
- 10월 18일: 엑스라샤펠 조약 체결. 마리아 테레지아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이 인정되었고,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는 대신 파르마, 피아첸차, 과스탈라가 스페인에게 양도되었으며,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점유가 공인되었다.
- 1749
- 5월 17일: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 출생
- 1750
- 1751
- 1752
- 1753
- 1754
- 일자미상: 프랑스-인디언 전쟁 발발
- 3월 6일: 3대 총리, '헨리 펠럼'(10년 183일, 휘그당) 임기 종료
- 3월 16일: 4대 총리, 뉴캐슬 공작 '토머스 펠럼홀리스'(1차, 2년 246일, 휘그당) 임기 시작
- 12월 13일
- 1755
- 11월 2일: 마리 앙투아네트, 출생
2.5. 7년 전쟁(1756 ~ 1763)
- 1756
2.6. 1757, 인도 식민지화(1757 ~ 1947) 시작
- 1757
- 1월 27일: 영국 해군의 존 빙에 대한 판결 내려짐. 교전수칙 12조 위반 판결
- 6월 25일: 5대 총리, 데번셔 공작 '윌리엄 캐번디시'(221일, 휘그당) 임기 종료
- 7월 2일: 6대 총리, 뉴캐슬 공작 '토머스 펠럼홀리스'(2차, 4년 329일, 휘그당) 임기 시작
- 7월 26일: 조지 2세의 셋째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오거스터스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 연합군이 하스텐벡 전투에서 데스트레 백작 루이 샤를 세자르 르 텔리어가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패배함. 이후 연합군은 일시적으로 해체되었고 하노버는 프랑스에게 항복했지만, 조지 2세는 아들을 경질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를 새 지휘관으로 선출해 연합군을 재결성함.
- 10월 17일: 오스트리아군의 하디크가 전투를 끝냄,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의 일부를 점령하고, 20만 탈러를 요구함. 이후, 하디크는 오스트리아에서 중장으로 승진함
- 10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25대 황제, '오스만 3세' 퇴위
- 10월 30일: 오스만 제국의 26대 황제, '무스타파 3세' 즉위
- 1758
- 1월: 러시아군의 동프로이센 침공후 점령, 이후 1762년까지 점령됨.
- 4월: 영국과 프로이센, 영보협정 체결, 영국이 67만 파운드의 보조금을 프로이센에게 전달함
- 6월 23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이 크레펠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라인강을 건너 프랑스 본토로 침입했으나 보급로가 프랑스 별동대에게 위협받자 철수함.
- 9월 11일: 프랑스 해안을 침략한 영국군이 생 카스 전투에서 참패함.
- 1759
- 8월 12일: 프로이센, 쿠네르스도르프 전투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에게 대패
- 9월: 베를린에 도착한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 돌연 철수함: 브란덴부르크 가의 기적 발생
- 9월 13일: 제임스 울프가 지휘하는 영국군과 루이 조제프 드 몽캄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북미 식민지의 패권을 놓고 격돌함.(아브라함 평원 전투) 영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서 프랑스 북미 식민지의 핵심 거점이었던 퀘벡을 공략해 프랜치-인디언 전쟁의 승기를 확고히 함.
- 11월 21일: 오스트리아군이 막센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승리
3. 조지 3세 (1760~1820, 59년 3개월)
- 1760
- 10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을 잠시 점령하고 철수함
- 10월 25일: 조지 3세(23세) 재위에 오름.
- 1761
- 2월: 프로이센군, 랑엔잘짜 전투에서 프랑스군 기습하여 승리함
- 7월 15일: 빌링하우젠 전투에서, 프로이센 + 하노버 + 영국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격파
- 10월: 채텀 백작 윌리엄 피트 사임.
- 1762
- 5월 26일
- 6월: 러시아 제국의 근위대 반란
- 6월 24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영국+프로이센+하노버+헤센 연합군이 빌헴스타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함. 이후 프랑스는 전의를 상실하고 영국과 강화 협상을 진행함.
- 7월 9일
-
- 전근대적인 농노제가 강화됨
3.1. 7년 전쟁(1756 ~ 1763) 종료
3.2. 1763, 캐나다의 식민지화(1763 ~ 1982) 시작
3.3.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시작
- 1768
- 1769
- 8월 1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 1770
- 1771
- 1772
- 1773
- 일자미상: 에드워드 제너(25세), 고향으로 돌아가 개업의가 됨, 이 지역에서는 소의 우두에 걸린 후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3.4.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종료
러시아가 크게 승리하여 '우크라이나 남부'와 '캅카스 북부', '체르케스 지방'을 할양받았으며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존속해온 '크림 칸국'을 완전독립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1783년에 완전히 합병하였다. 오스만으로서는 최악의 굴욕을 당했다.
3.5. 1775, 미국의 독립
3.5.1. 1775, 미국 독립전쟁 시작
- 1776
- 8월 27일: 롱아일랜드 전투.
- 9월 15일: 영국군, 뉴욕 입성.
- 9월 16일: 할렘 하인츠 전투.
- 10월 28일: 화이트 플래인스 전투.
- 11월 17일: 워싱턴 요새 공방전
- 12월 26일: 트렌턴 전투
- 1777
- 1월 3일: 프린스턴 전투.
- 8월 2일 ~ 8월 22일: 스탠윅스 요새 공방전.
- 8월 6일: 오리스카니 전투.
- 8월 16일: 베닝턴 전투.
- 8월 22일: 스태튼 아일랜드 전투.
- 9월 11일: 브랜디와인 전투.
- 9월 25일: 영국군, 필라델피아 입성.
- 9월 19일 ~ 10월 7일: 새러토가 전투.
- 10월 4일: 저먼타운 전투.
- 1778
- 1779
- 4월 12일: 스페인, 영국에 선전포고하고 미국 독립 전쟁에 뛰어듬.
- 6월 24일: 스페인군, 지브롤터 포위.
- 9월 16일 ~ 10월 18일: 서배너 공방전.
- 1780
- 1781
- 1월 17일: 카우펜스 전투.
- 3월 9일 ~ 5월 8일: 펜서콜라 공방전. 영국, 플로리다 상실.
- 3월 15일: 길퍼드 코트하우스 전투.
- 9월 5일: 체사피크 만 해전.
- 9월 28일 ~ 10월 15일: 요크타운 전투.
3.5.2. 1783, 미국 독립전쟁 종료: 미국의 독립
- 1783
- 2월 7일: 지브롤터 공방전 종결. 스페인군 철수.
- 4월 2일
- 6월 8일: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의 대분화 시작, 이후 8개월간 지속됨
- 약 130여개의 화구가 탄생
- 화산 분화지수 6에 달하는 폭발을 일으켰다.
- 이 분화는 인류가 관측한 화산폭발 중에 가장 많은 양의 용암을 분출한 것으로 기록
- 인류가 관측한 이래 유일한 용암대지 생성 목격사례
- 남부 아이슬란드의 절반에 달하는 대지가 용암에 뒤덮혔으며,
- 지진을 동반하며 약 25KM에 달하는 균열을 일으켰다.
- 이 분화로 아사를 포함해서 당시 거주민의 20%에 달하는 1만여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 기르던 가축의 약 70%가량에 달하는 수가 폐사했다.
-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분출된 대량의 아황산가스였는데, 이 가스로 인해 지구 대기권에 태양빛 차폐막이 만들어져서 지구 기온이 내려가 핵겨울과 유사한 화산 겨울을 만들어냈다.
- 1783년 이후 수 년간 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이상기후가 발견되었다.
- 유럽 전역에서 기근이 일어나 유럽 인구의 약 10퍼센트 가량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고,
- 특히 프랑스는 1785년부터 수년간 연속해서 식량 부족사태가 일어났다. 이 당시 기록에는 지나가던 여행자를 살해하여 잡아먹은 사례 등 식인이 행해졌다는 사실이 남아있을 정도다.
- 이로 인한 민심의 불안과 여러 사회불만이 고이다 폭발하여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게 되었다.
- 9월 3일: 미국 독립전쟁 종료: 미국 독립
- 12월 19일
- 15대 총리 포틀랜드 공작 '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1차, 261일, 휘그당) 임기 종료
- 1784: 겨울부터 유럽대륙에 혹한이 몰아침
- 2월: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의 분화 멈춤.
- 1785: 프랑스에 극심한 가뭄
- 11월 3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세), 육군 사관학교 졸업, 발랑스에 주둔한 라 페르 연대 포병 소위로 임관
- 1786
3.6. 1787, 호주의 식민지화(1787 ~ 1986) 시작
3.7.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시작
3.8. 1789, 프랑스 혁명 시작
- 1789
- 1790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3세)의 아버지 자살
- 1791
3.9.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종료
3.10. 제1차 프랑스 혁명전쟁(1792 ~ 1798, 7년간) 시작
3.10.1. 1792, 뉴욕증권거래소의 시작
- 1792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4세) 코르시카로 귀향, 아작시오의 국민위병대 중령이 됨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4세), 코르시카의 파올리와의 불화로 마르세유로 도피
- 4월 20일
- 프랑스 왕국의 '입법의회' 투표결과 오스트리아와 전쟁 결정
- 외무장관이었던 '뒤무리에즈' 장군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에 대한 침공을 준비함
- 5월 17일: 증권중개업자와 상인 24명이 모여 월가 68번지 버튼우드 아래서 증권 거래방법, 수수료율 등을 정한 협정에 서명함.
- 7월 8일: 프랑스 제1공화국, 프로이센에 선전포고
- 7월 19일: 프로이센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이 코블렌츠에서, 프랑스 영토 침공 시작
- 8월 4일: '퍼시 셸리' 출생
- 8월 9일: 파리의 과격 혁명가들이 파리 시청을 급습한 후, 코뮌을 결성
- 9월 2일
- 오스트리아군이 '베르됭' 요새를 함락시킴
- 조르주 당통, 시민을 선동하여 반혁명파에 대한 학살을 자행
- 9월 20일
- 마르세유의 의용군 700명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파리로 행군
- 발미에서 프랑스 혁명군의 장군인, '뒤무리에즈'가 '켈리르만'의 원군을 얻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퇴함
- 11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민공회,' 유럽의 정부들을 전복시키려는 모든 시민들을 원조하겠다는 선언을 함(;;;)
반란조장
11월 6일: '뒤무리에즈'가 저마프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게 승리
- 1793
- 1월: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는 전시체제 강화를 위해 '국방 위원회'를 설치. 후의 '공안위원회'의 전신.
- 2월 24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민공회', 국민개병제를 실시 30만 징병령을 발표
- 3월 18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민공회'가 파견한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장군,' '네르빈덴 전투'에서 패배함
- 3월 23일: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민공회' '국방 위원회'를 25명으로 증원, 이를 통해 국내외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함.
- 대연정 형태라 토론만 벌일 뿐 결론을 내리지 못함
- 이후 '공안위원회'의 원형이 됨
- 4월 2일: 발미전투의 영웅,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장군이 배신
- 4월 5일: '사를 프랑수아 뒤무리에' 장군 오스트리아 진영으로 도망감.
- 5월 31일: 자코뱅파가 온건파인 지롱드파를 쓸어버리는 사건 발생, 이후 온건파들의 도시인 리옹, 아비뇽, 님즈, 마르세유에서 반란 발생.
- 6월 24일: 자코뱅파, '93년 헌법' 제정
- 7월: 프랑스 제1공화정, 국가총동원령 발표 18세부터 25세까지의 모든 독신 남성을 징병, 보급은 현지에서 강제징발하기로 함.
- 8월 10일: '93년 헌법' 선포
- 남성의 보통 선거
- 사회의 목적은 공공의 행복
- 8월 16일: 프랑스 제1공화국, 국민개병제 실시
- 8월 23일: 프랑스 제1공화국, 징병제 실시, 상실됐던 병력의 복구시도
- 9월 17일: 프랑스 제1공화국, 피의자법 통과, 공포정치의 일환
- 일자미상: 프랑스 툴롱에서 왕당파가 영국군과 스페인군을 받아들임.
- 11월 11일: 공안위원회는 토벌군 사령관을 교체
- 12월 4일: 프랑스 제1공화국, 혁명정부법을 통해 성문화됨.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5세), 프랑스군 대위로 근무중 툴롱 공성전에서 무훈을 세워 사단장이 됨.
- 12월 18일: 뒤고미에 장군의 툴롱 함락,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5세) 왕당파의 '툴롱 반란'진압
3.11. 1794, 프랑스 혁명의 종료(테르미도르 반동)
- 1794
- 7월 28일: 테르미도르 반동 발생, Thermidorian Reaction, 프랑스 대혁명의 끝으로 봄
- 로베스피에르(37세) 사형당함
- 동생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도 함께 처형당함.
- 준장이 된지 7개월 만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6세)도 몽테뉴파로 고발되며 감옥에 갇혔다가 2주 후, 풀려남
- 12월 24일: '테르미도르 파', 수입자유화, 통제가격의 철폐, 폭발적 인플레이션 발생. 아시냐 국채의 가치 폭락이 일어남.
- 1795
- 일자미상: 프랑스 제1공화국 군대, 네덜란드 공화국을 기습공격해 멸망시킴, 이후 괴뢰정부인 '비타비아 공화국'을 세움.
- 2월 21일: '테르미도르 파', '성직자 기본법'을 폐지하고, 신교의 자유를 보장, 정교분리 원칙을 세움
- 5월 30일: 교회에 제례를 다시 허용.
- 6월 8일: 루이 17세(11살) 사망
- 7월 10일: 스페인, 프랑스 제1공화국 혁명군에게 산토도밍고를 떼어준 후, 전열에서 이탈
- 9월: 부르주아 기반의 테르미도르파, 국민공회에서의 의석확보를 위해 삼분법 법안을 통과시킴
- 9월 7일: 존 윌리엄 폴리도리 출생
- 9월 1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7세), 1년동안 마음에 드는 일(코르시카 반란군, 이탈리아 원정, 오스만제국 근대화 사절, 등등)을 요청하지만 '국민공회'에서 전부 퇴자를 놓고, 다시 방데행을 촉구함.
- 9월 30일: 프랑스 왕당파의 '아르투와 공작[23]'은 유섬에 3천명의 군대와 함께 상륙.
- 10월 4일: 파리의 48개 구역중, 골수 왕당파 구역이었던 '르펠르티에' 구역에서 '국민공회'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선언함.
- 10월 5일: 파리에서 방데미에르 13일 사건으로 불리는 반란이 일어나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27세)가 무력으로 진압한 후, 다시 출세길에 복귀
- 10월 26일: 프랑스 제1공화국, '국민공회' 해산
- 11월 2일: 프랑스 제1공화국, '총재정부' 구성
- 행정권을 가진 총재(directory) 5명
- 온건파: 청렴한 '카르노', '바르텔레미',
- 강경파: 부패한 '바라스', '뢰벨', '레픽스'
- 입법권을 가진 500인의 위원회(하원과 비슷)
- 거부권을 가진, 원로원(상원과 비슷)을 구성
- 이들이 결정한 정책: 군국주의. 즉,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 약탈을 선택
- 1796
- 11월 17일
- 1797
- 2월: 프랑스의 호세와 영국의 존 저비스 제독의 '생빈센트 곶 해전' 발생, 영국 승리
- 8월 30일: 메리 셸리 출생
- 10월 17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제1공화국 혁명군간에 '캄포포르미오 평화조약' 채결(라인강 서안의 모든 제국 영토 할양)후,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탈
3.12. 제1차 대프랑스 혁명전쟁의 끝(1798)
- 1798
- 일자미상: 1차 프랑스 혁명전쟁 종료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11살)의 큰 할아버지 사망, 이후 작위를 물려받음.
- 7월 3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집트의 아부키르에 상륙
- 7월 21일: 피라미드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맘루크 기병들을 상대로 방진을 사용해 승리
- 7월 2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카이로 입성
- 10월 21일: 카이로에서 폭동 발생
3.13.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시작(1799 ~ 1801)
- 1799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1세), 야파 점령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1세), 악카(아크레) 공략 실패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1세)의 야파 주둔 프랑스 군 사이에서 페스트 발생
- 7월 2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1세)과 노장 세이드 무스타파가 있는 오스만 군이 격돌, 프랑스 군 승리.
- 일자미상: 러시아 제국 전선 이탈.
- 8월 22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1세), 본국에서의 입지 축소를 우려해서 소수의 부하들 만을 이끌고 프리깃 두 척에 나눠타서 이집트를 탈출해 프랑스로 향함.
- 10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로 귀국
- 1800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2세), 모로에게 독일공략 명령
3.14. 제2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의 끝
- 1801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14살), 해로우 스쿨 입학
- 2월 9일: '뤼네빌 조약'에서 프랑스 제1공화국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국가로서 승인받음
- 3월 23일
- 1802
- 7월 24일: 알렉상드르 뒤마(아버지) 출생
3.14.1. 1803, 미국의 루이지애나 구입
- 1803
3.15. 1804,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37세)
- 1804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37세) 황제로 즉위
- 5월 10일
- 17대 총리 '헨리 에딩턴'(3년 55일, 토리당) 임기 종료
3.15.1. 제3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5)
- 1805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18세),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 입학
- 6월: '캐롤라인 폰손비(Caroline Ponsonby, 21살)', 멜버른 자작 '윌리엄 램(27세)'과 결혼
3.15.2. 제9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06 ~ 1812) 시작
3.15.3. 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6 ~ 1807)의 시작
- 1806
3.15.4. 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6 ~ 1807)의 끝
- 1807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20세),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 졸업, 이후 2년간 유럽여행을 가서 포르투갈, 에스파냐, 그리스 등지를 돌아봄
- 3월 31일
- 5월 2일: 나폴레옹(40세)의 '반도전쟁' 시작
- 5월 29일
- 8월 11일: '윌리엄 램(29세)'과 '캐롤라인 램(23세)'의 첫번째 자식인 아들, '조지 어거스터스 프레데릭' 출생
- 11월 11일: 영국, '긴급명령 1807년' 발표, 프랑스와 연합국의 무역을 전면금지 시킴, 역봉쇄
- 일자미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0세), '밀라노 칙령 1807년' 발표, 영국 항구 이용 혹은 영국에게 관세를 내는 상선을 적으로 간주, 포획할 것이라 선언. 이로인해 러시아 제국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음
- 1808
- 7월 28일
- 29대 오스만 제국 황제 무스타파 4세 퇴위
- 30대 오스만 제국 황제 '마후무트 2세' 즉위
3.15.5. 제5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9 ~ 1812)의 시작
- 1809
- 1810
3.16. 1811 ~ 1820, 10년, 조지 4세의 섭정시기(The Regency)
3.16.1. 제5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09 ~ 1812)의 끝
3.16.2. 제9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06 ~ 1812) 종료
3.16.3. 미영전쟁(1812 ~ )
- 1812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25살)의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1부, 2부 간행, 이후 찬사와 인기를 누리게 됨.
- 3월: 조지 고든 바이런(25살), '캐롤라인 램(27세)'과 불륜을 시작함.
- 5월 11일: 21대 총리 '스펜서 퍼시벌'(2년 220일, 토리당) 암살 당함.
- 6월 8일: 22대 총리 리버풀 경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14년 308일, 토리당) 임기 시작
- 6월 24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4세), 러시아 침공을 시작함
- 8월: 조지 고든 바이런(25살)과 '캐롤라인 램(27세)'의 불륜이 발각되어,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아일랜드로 보냄.
3.16.4. 제6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나폴레옹 전쟁(1813)
- 1813
- 1814
- 3월말: 동맹군에 의해 프랑스 제1제국의 수도, 파리가 함락될 위기에 처함.
- 3월 29일
- 4월 2일, 밤
- 4월 11일: '퐁텐블로 조약' 합의 도달.
- 4월 12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6세), 음독자살 기도
- 4월 16일: '퐁텐블로 조약' 체결.
- 4월 17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6세)의 '반도전쟁' 끝남
- 4월 29일: 루이 18세, 콩피뉴에 도착
- 5월 29일: 조제핀 드 보아르네(52세) 폐렴으로 사망
3.16.5. 제7차 나폴레옹 전쟁(1815)
3.16.6. 미영전쟁의 끝(1815)
3.16.7. 빈 체제의 시작(1815 ~ 1854)
3.16.7.1. 1815, 로스 차일드 가문이 영국 국채를 대량매입함
- 1815
-
- 소맥 1쿼터(약 12.7kg)당 가격이 80실링(4파운드)이 될 때까지는 외국산 소맥의 수입을 금지함.
- 1월: 조지 고든 바이런(28세), '애나벨라 밀뱅크'와 결혼
- 2월 26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7세), 엘바섬 탈출
- 3월 19일: 루이 18세, 심야에 파리를 빠져나가 도망감
- 3월 20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47세), 파리 재입성
- 6월 9일: 빈 회의에서 '빈 의정서' 체결하게 됨(유럽 협조체계 개념, The Concert of Europe). 이후 40년간(1815 ~ 1854)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크림 전쟁(1854) 기점으로 붕괴됨
- 6월 22일
- 정부 위원회, 7월 7일까지 정권을 인수하고 부르봉왕조의 복귀 선언
- 정부 위원회, 나폴레옹의 칙령들을 무효화시킴
- 7월 7일: 루이 18세, 복위
- 8월 1일: 존 윌리엄 폴리도리(21세), 박사학위 받음
-
- 1816: 유럽에서 여름에 기록적인 한파 발생
3.16.7.2. 1817, 왕위계승 2순위인 샬럿 어거스타 공주 사망
3.16.7.3. 1817, 로스 차일드 가문이 보유한 영국 국채를 40%이상 오른 가격으로 매각함: 6억 파운드의 이익
- 1817
- 1818
- 1819
- 일자미상: 윌리엄 4세의 첫째 딸, 샬럿 공주출생후 바로 사망
- 일자미상: 조지 고든 바이런(32살), 장시 '돈 후앙'(1819 ~ 1824) 집필 시작, 테레사 귀치올리 백작부인과 연예를 하기 시작하며 라벤나로 감.
- 4월 2일:
- 4월 6일: 윌리엄 고드윈, 매거진의 소유자인 '헨리 콜번'에게 편지를 보냄.
- 4월 27일
- 5월 24일: 빅토리아 여왕 출생
- 6월: 조지 고든 바이런(32)의 미완성 원고, '조각(Fragment)', 머레이의 독단으로 영국에 발표됨
- 9월 25일: 페리가 폴리도리의 '모든 상황들에 대한 설명 편지'를 출판함.
4. 조지 4세 (1820~1830, 11년): 조지 3세의 첫째 아들
4.1. 그리스 독립전쟁(1821 ~ 1829)의 시작
- 1821
- 3월 6일: 그리스 독립전쟁의 발발
- 5월 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53세) 사망
- 8월 24일: 존 윌리엄 폴리도리(27세) 사망, 자살로 추청되는 죽음.
- 1823
- 1824
- 2월초: 조지 고든 바이런(37세),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짐
- 1825
- 2월: 오스만 제국의 이브라힘 파샤, 칸소, 크레타 섬을 점령하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서부에 남겨졌던 메트니 상륙. 이후 나바리노, 메솔롱기 점령 후 아테네 함락.
- 7월: 그리스군의 일부, 크레타섬 재탈환을 위해 상륙후 일부 요새 점령성공.
- 12월 1일
4.2. 1826, 말레이시아의 식민지화(1826 ~ 1957) 시작
- 1826
- 일자미상
4.3. 제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27 ~ 1829)의 시작
4.3.1. 1827, 나바리노 해전
- 1827
- 4월 4일: 조지 캐닝에 의해 오스만 제국과 의정서 조인
- 1. 그리스는 자치권이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속주로 남는다.
- 2. 모든 튀르크인은 그리스에서 떠난다.
- 3. 술탄은 영국과 러시아, 그리고 그리스와 협의하여 통치자를 선임한다.
- 4월 9일: 22대 총리 리버풀 경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14년 308일, 토리당) 임기 종료
- 4월 10일: 23대 총리 조지 캐닝(120일, 토리당) 임기 시작
- 7월 6일: 런던 협약 체결, '영국-러시아-프랑스간 해적행위를 근절하고 통상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력을 동원해 개입한다'는 내용
- 8월 8일: 23대 총리 조지 캐닝(120일, 토리당) 임기 종료
- 8월 31일: 24대 총리 고더리치 자작 '프레다릭 존 로빈슨'(143일, 토리당) 임기 시작
- 10월 20일: 오후 2시 나비라노 만에서 연합군과 오스만 제국군 사이에 해전 시작, 연합군의 대승.
- 1828
- 일자미상: 영국에서 신곡물법 제정됨: 하지만 여전히 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했기에 격렬한 반대운동이 벌어짐
- 1월 21일: 24대 총리 고더리치 자작 '프레다릭 존 로빈슨'(143일, 토리당) 임기 종료
- 1월 25일: 캐롤라인 램(44세) 사망
4.4. 제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827 ~ 1829)의 종료
4.4.1. 그리스 독립전쟁(1821 ~ 1829)의 종료
전후 처리를 위해 1829년 9월 아드리아노플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에 대한 종주권을 얻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의 무해 통항권과 오스만 제국 영내에서의 러시아인의 통상권을 획득하였다. 또한 캅카스 지방 전역과 다뉴브 강 하구 일대를 차지하였다. 아울러 세르비아에 대한 자치권이 보장되고 그리스에 대한 독립 인정이 이루어졌다.
이 전쟁의 영향으로 그리스가 독립하고, 속주였던 이집트가 자치권을 획득하자[29] 오스만 제국 내에서 개혁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탄지마트(은혜 개혁)를 단행하게 된다.
이 전쟁의 영향으로 그리스가 독립하고, 속주였던 이집트가 자치권을 획득하자[29] 오스만 제국 내에서 개혁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탄지마트(은혜 개혁)를 단행하게 된다.
- 1829
4.5. 1830,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식민지 총독, 무함마드 알리의 반란
4.6. 1830, 벨기에의 독립
5. 윌리엄 4세 (1830~1837, 8년): 조지 3세의 셋째 아들
- 1831
- 1월: 벨기에의 독립과 관련한 의정서가 채택되지만 벨기에가 이를 거부함
- 8월: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전쟁 재개
- 1832
- 4월 30일: 영국군 중위, 알렉산더 번즈를 카불로 보내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1826 ~ 1919)의 '도스트 무함마드'와 동맹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 이후 영국은 '도스트 무함마드'를 폐위시킬 계획에 착수함
- 1833
- 1834
- 1835
- 1836
- 일자미상: 자폐증상을 보이던, '윌리엄 램(58세)'과 '캐롤라인 램'의 아들, 조지 어거스터스 프레데릭(30세) 사망
- 8월 21일: 윌리엄 4세의 생일 저녁 만찬에서 제수씨, 이미 사망한 동생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에게 섭정이 맡겨지지 않도록 9개월(1837년 5월 24일 후까지)동안 더 살 것이라고 선언함.
- 1837
- 5월 24일: 빅토리아 여왕(19살)이 성년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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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ниш/Niš, 니스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세르비아 영토로 프랑스의 니스(Nice)가 아니다. 여담으로 니시 조약은 1922년에도 동명의 조약이 있다.[2] 영국 역사상 최악의 합법살인이라 불림, 하지만 어찌됐던 이후 영국 해군의 임전무퇴의 정신이 강해짐[3] 영국 역사상 최악의 합법살인이라 불림, 하지만 어찌됐던 이후 영국 해군의 임전무퇴의 정신이 강해짐[4] 영국 역사상 최악의 합법살인이라 불림, 하지만 어찌됐던 이후 영국 해군의 임전무퇴의 정신이 강해짐[5] 시민권은 일년전의 '프랑스 인권선언'과는 다르게 모든 프랑스인이 갖지 못하게 바뀜, 사회적 기업의 주주인 능동적 남성 시민에만 국한됨, 시민권이 없었던 300만명의 무산시민은 정치로부터 배제됨, 사실상의 부르주아 정치 독점.[6] 프랑스 최초 입헌군주제 정권 하의 일원제 회의[7] 시민권은 일년전의 '프랑스 인권선언'과는 다르게 모든 프랑스인이 갖지 못하게 바뀜, 사회적 기업의 주주인 능동적 남성 시민에만 국한됨, 시민권이 없었던 300만명의 무산시민은 정치로부터 배제됨, 사실상의 부르주아 정치 독점.[8] 프랑스 최초 입헌군주제 정권 하의 일원제 회의[9] 시민권은 일년전의 '프랑스 인권선언'과는 다르게 모든 프랑스인이 갖지 못하게 바뀜, 사회적 기업의 주주인 능동적 남성 시민에만 국한됨, 시민권이 없었던 300만명의 무산시민은 정치로부터 배제됨, 사실상의 부르주아 정치 독점.[10] 프랑스 최초 입헌군주제 정권 하의 일원제 회의[11] 오늘날의 루마니아에 있는 도시.[12] 오늘날의 몰도바 동남부 일대.[13] 러시아-조지아 국경지대에서 발원하여 흑해의 일부인 아조프 해로 흘러드는 강 [14] 1792년 9월 20일부터 1795년 10월 26일까지 존속했던 단원제 입법기관, 집행권한도 갖고 있었기에 행정부의 역할도 담당[15] 1792년 9월 20일부터 1795년 10월 26일까지 존속했던 단원제 입법기관, 집행권한도 갖고 있었기에 행정부의 역할도 담당[16] 1792년 9월 20일부터 1795년 10월 26일까지 존속했던 단원제 입법기관, 집행권한도 갖고 있었기에 행정부의 역할도 담당[17] 1792년 9월 20일부터 1795년 10월 26일까지 존속했던 단원제 입법기관, 집행권한도 갖고 있었기에 행정부의 역할도 담당[18]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에 최고판매가를 법으로 정함, 그 결과 암시장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기 시작,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됨[19]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에 최고판매가를 법으로 정함, 그 결과 암시장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기 시작,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됨[20] 식료품과 생필품의 가격에 최고판매가를 법으로 정함, 그 결과 암시장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기 시작,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됨[21] 훗날 샤를 10세[22] 훗날 샤를 10세[23] 훗날 샤를 10세[24] 오늘날의 몰도바.[25] 2017년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이때의 만남이 그려지며 영화가 시작된다.[26] 2017년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이때의 만남이 그려지며 영화가 시작된다.[27] 2017년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이때의 만남이 그려지며 영화가 시작된다.[28] 1827년 10월 20일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 나바리노 만에서 벌어진 해전.[29] 당시 이집트의 총독이었던 메흐메드 알리가 오스만제국에 협력하는 대신 이집트의 자치권을 약속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