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대한민국의 동양화가로서, '남도화의 완성자',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 등으로 불릴 만큼 한국 수묵산수(水墨山水)의 대가이다.
남농(南農) 허건(許楗) 선생 문하에서 그 기법을 배웠으며, 후에 본인만의 독창적인 전통 먹산수 화풍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아산은 남농의 제자이면서도 남농을 따르지 않았다. 그가 그린 남종화의 세계는 유현하고 선명한 먹빛에 전라도의 강렬하고 구성진 자연을 담아내며, 그 속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항구적인 정신을 집약시켜 보여준다. 자연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현실 도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것을 초극해, 토착적이면서도 영원한 정신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는 남종화라는 무대 위에서 인간의 정혼(精魂)을 불태울 수 있는 천부적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다.
장석원[11], 「아름다운 착각(2019)」 中 '최후의 남종화가 조방원'
2. 작품
一 生 墨 奴
|
"한평생을 먹(墨)의 노예로", 그의 인생관(人生觀)이자 예술관(藝術觀)이며 교육관(敎育觀)이었다.
청산백운
|
추성부
|
3. 경력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제3회·12회)
-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제19회·24회·27회)
- 전라남도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제1회·3회·6회~12회·14회~17회) 및 운영위원(제18회)
- 전라남도 문화상 심사위원(제13회·20회)
- 동아미술제(동아일보사) 심사위원(1985년)
- 현대한국화협회 창립이사(1981년)
- 전라남도 국악협회 고문(1979년)
-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1978년)
4. 수상
5. 기타
[1] 음력 1926년 11월 29일. 음력생일을 사용하였다.[2] 음력 1926년 11월 29일. 음력생일을 사용하였다.[3]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4]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5]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대아산(大牙山)에서 그 이름을 따왔으며,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6]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대아산(大牙山)에서 그 이름을 따왔으며,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7] 동양화의 한 분파로 북종화(北宗畵)에 대비되는 화파로서, 대표적으로 '수묵산수화'를 그 예로 들 수 있다.[8] 동양화의 한 분파로 북종화(北宗畵)에 대비되는 화파로서, 대표적으로 '수묵산수화'를 그 예로 들 수 있다.[9]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미술평론가이다. 전직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전북도립미술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에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미술평론가이다. 전직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전북도립미술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에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1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미술평론가이다. 전직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전북도립미술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에는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12] 現 대한민국 미술대전[13] 現 대한민국 미술대전[14] 개관 당시의 명칭은 '도립 전라남도 옥과미술관'[15] 개관 당시의 명칭은 '도립 전라남도 옥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