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96 시즌
| →
| ||
종합 순위
| 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 차
| 승점
| |
5 / 9
| 32
| 10
| 7
| 15
| 41
| 49
| -8
| 37
|
전북 다이노스 1996시즌
| |
구단주
| 신준호
|
감독
| |
시즌 결과
| |
8강(-)
(2전 0승 2무 0패 4득점 4실점 2승점) | |
합산 성적
| 42전 12승 12무 18패 53득점 61실점
|
최다 득점자
| 비탈리 (11골)
|
최다 도움자
| -
|
1. 프롤로그2. 1996 시즌 선수단3. 이적 시장4. [[전북 현대 모터스/유니폼|유니폼]]5. [[K리그 리그컵|1996 아디다스컵]]
5.1. 1R, 03월 30일 (토) vs. 대우 (원정, 1:1 무)5.2. 2R, 04월 03일 (수) vs. 포항 (홈, 0:0 무)5.3. 3R, 04월 07일 (일) vs. LG (원정, 4:0 승)5.4. 4R, 04월 10일 (수) vs. 일화 (홈, 0:0 무)5.5. 5R, 04월 14일 (일) vs. 유공 (원정, 0:2 패)5.6. 6R, 04월 18일 (목) vs. 전남 (홈, 1:3 패)5.7. 7R, 04월 25일 (목) vs. 수원 (원정, 0:1 패)5.8. 8R, 04월 28일 (일) vs. 현대 (홈, 2:1 승)
6. [[전북 다이노스/1996년/한국프로축구대회|1996 라피도컵 한국프로축구대회]]7. [[대한축구협회 FA컵/1996년|1996 FA컵]]8. 시즌 평가1. 프롤로그
창단 2년 째 지난 시즌 후기리그 4위에 오르며 한국 프로축구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전북은 올 해 기대를 가졌다.
2. 1996 시즌 선수단
[ 펼치기 · 접기 ]
|
※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3. 이적 시장
3.1. 영입
3.2. 방출 및 은퇴
4. 유니폼
1996 시즌 유니폼
| |
원정 유니폼
| 유니폼 메이커
|
5. 1996 아디다스컵
1996년 리그컵 (공식 대회명칭 : 96 아디다스컵)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으로 팀이 9팀으로 증가하였다.
5.1. 1R, 03월 30일 (토) vs. 대우 (원정, 1:1 무)
5.2. 2R, 04월 03일 (수) vs. 포항 (홈, 0:0 무)
5.3. 3R, 04월 07일 (일) vs. LG (원정, 4:0 승)
| ||||
구덕운동장
| ||||
0 : 4
| ||||
전북 다이노스
| ||||
- 경기 요약
23,000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김도훈과 비탈리의 투톱 전술로 LG 치타스의 골문을 노렸다. 경기시작 7분만에 이경춘이 미드필드 중간 지점에서 수비수 3명의 키를 넘기며 절묘하게 밀어준 볼을 비탈리가 달려나온 LG 골키퍼 사리체프[5]를 제치고 반대방향으로 패스, 이를 김도훈이 오른발로 가볍게 밀어넣었다. 그 후 김도훈의 페널티킥골과 비탈리의 골로 전반을 3:0으로 마무리하고, 후반 61분 김도훈이 또다시 pk득점으로 4:0완승을 했다
김도훈의 해트트릭으로 아디다스컵 3R 승점 5점으로 대우와 동률이지만 득실차에 앞서 현재 단독선두 1위.
김도훈의 해트트릭으로 아디다스컵 3R 승점 5점으로 대우와 동률이지만 득실차에 앞서 현재 단독선두 1위.
5.4. 4R, 04월 10일 (수) vs. 일화 (홈, 0:0 무)
5.5. 5R, 04월 14일 (일) vs. 유공 (원정, 0:2 패)
| ||||
목동경기장
| ||||
2 : 0
| ||||
전북 다이노스
| ||||
35' 권태규
(도움 : 세르게이) 85' 세르게이 (도움 : 윤정춘) | ||||
- 경기 요약
올시즌 첫패
5.6. 6R, 04월 18일 (목) vs. 전남 (홈, 1:3 패)
| ||||
익산공설경기장
| ||||
1 : 3
| ||||
전북 다이노스
| ||||
78' 김도훈
| 7' 안드레이 (도움 : 구즈노프) 80' 김도근 84' 이평재 | |||
- 경기 요약
5.7. 7R, 04월 25일 (목) vs. 수원 (원정, 0:1 패)
5.8. 8R, 04월 28일 (일) vs. 현대 (홈, 2:1 승)
6. 1996 라피도컵 한국프로축구대회
• 1995시즌과 마찬가지로 전기,후기리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996 한국프로축구대회 / 전북 다이노스 최종 순위
| |||||||||
종합순위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5 / 9
| 32
| 10
| 7
| 15
| 38
| 53
| -15
| 37
| |
7. 1996 FA컵
7.1. 16강, 11월 30일 (토) vs. 상무 (홈, 1:1 무/PSO 4:1)
| ||||
익산공설운동장 | ||||
1 : 1
4 : 1 | ||||
전북 다이노스
| ||||
62' 김봉현
| 47' 최문식
| |||
7.2. 8강, 12월 02일 (월) vs. 부천 (중립, 3:3 무/PSO 3:2)
| ||||
진주공설운동장 | ||||
3 : 3
2 : 3 | ||||
전북 다이노스
| ||||
8. 시즌 평가
8.1. 주요 기록
전북 다이노스 1996시즌 주요기록
| |
최다 득점자
| 비탈리 (11골)
|
최다 도움자
| |
최다 공격 포인트
| |
한 경기 최다 득점
| 5골
|
한 경기 최다 실점
| 3골
|
최다 점수차 승리
| 4점
|
최다 점수차 패배
| 3점
|
경기 당 평균 득점
| 1.26골
|
경기 당 평균 실점
| 1.45골
|
최다 관중
| 23,874명 (vs. 전남)
|
최소 관중
| 453명 (vs. 부천)
|
평균 관중
| 5,801명
|
8.2. 수상 내역
• 1996 프로 축구 페어플레이상
8.3. 시즌 총평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전초전 성격을 띤 아디다스컵 7위. 전북이 정규리그 성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회였다.
당초 전북은 최약체로 분류됐었다. 걸출한 신인 보강이 없는 데다 기존 스타급 선수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구단의 빈약한 재정으로 인해 반짝 돌풍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북은 2년 전(버팔로) 헝그리 시절을 되새기며 약전 고투 끝에 중위권 그룹인 5위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나마 전북이 5위(5승 4무 7패)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스트라이커 김도훈의 공이 컸다. 김도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해 어려운 살림을 이끌었다. 반면 김도훈과 함께 투톱으로 나선 비탈리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3골에 그쳤다.
전북이 상위권으로 치솟지 못한 것은 다른 팀처럼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없었기 때문. 여기에다 비탈리, 정종선, 알렉세이(GK) 등 간판급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것도 성적 부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팀의 간판 김도훈(8월 29일) 마저 상대 수비수와 부딪쳐 오른쪽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당해 전북은 참담함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천안 일화서 이적한 김용갑이 김도훈의 몫을 대신하며 비탈리와 함께 투톱에 포진해 난국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득점원의 단조로움은 크게 버릴 수 없다. 허리 진영이 취약한데다 2선 공격수들이 득점 루트에 가세하지 못해 7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김용갑이 9골을 뽑아내 팀 내 득점 1위에 오르며 전북의 새로운 골잡이로 등록한 것과 96 프로 축구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마땅한 전용구장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힘든 시즌을 보낸 전북은 결국 초대 사령탑인 차경복 감독이 두 시즌을 보내고 사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함께 전북은 최만희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키며 97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
당초 전북은 최약체로 분류됐었다. 걸출한 신인 보강이 없는 데다 기존 스타급 선수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구단의 빈약한 재정으로 인해 반짝 돌풍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북은 2년 전(버팔로) 헝그리 시절을 되새기며 약전 고투 끝에 중위권 그룹인 5위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나마 전북이 5위(5승 4무 7패)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스트라이커 김도훈의 공이 컸다. 김도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해 어려운 살림을 이끌었다. 반면 김도훈과 함께 투톱으로 나선 비탈리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3골에 그쳤다.
전북이 상위권으로 치솟지 못한 것은 다른 팀처럼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없었기 때문. 여기에다 비탈리, 정종선, 알렉세이(GK) 등 간판급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것도 성적 부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팀의 간판 김도훈(8월 29일) 마저 상대 수비수와 부딪쳐 오른쪽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당해 전북은 참담함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천안 일화서 이적한 김용갑이 김도훈의 몫을 대신하며 비탈리와 함께 투톱에 포진해 난국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득점원의 단조로움은 크게 버릴 수 없다. 허리 진영이 취약한데다 2선 공격수들이 득점 루트에 가세하지 못해 7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김용갑이 9골을 뽑아내 팀 내 득점 1위에 오르며 전북의 새로운 골잡이로 등록한 것과 96 프로 축구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마땅한 전용구장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힘든 시즌을 보낸 전북은 결국 초대 사령탑인 차경복 감독이 두 시즌을 보내고 사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함께 전북은 최만희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키며 97년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