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혹사논란
장우람이 진짜 유명해진 것은 사실 고교 시절의 혹사 논란 때문. 2007년 전주고등학교 3학년[1] 당시 봉황대기 1회전에서 상원고를상대로 14.1이닝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과 동시에 팀 타선이 전혀 터지지 않자 서스펜디드 경기가 되어 무려 이틀 간 18이닝을 던지면서 1-0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틀동안 18이닝 214투구수 3피안타 3볼넷 1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첫 날에는 연장 12회까지 12이닝 11탈삼진 1볼넷, 두번째 날에 속개된 경기에서 13회와 14회를 삼자범퇴로 막았다. 15회 1사 후 중전안타를 허용해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공식기록이나 14 1/3이닝 노히트노런 기록은 한국야구 역사상 최장 노히트노런 기록이다. 214투구는 2006년 대통령배 1회전 경기고와 게임에서 진흥고 투수 정영일이 13 2/3이닝 242투구수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투구수다. 당시 전주고에서 유일하게 마운드를 지키던 투수였기 때문에 일주일 뒤 열린 다음 봉황대기 2회전에서 진흥고를 상대로 낼 투수가 없어 9-0 완패를 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2006년에 정영일의 혹사 문제 등이 겹치면서 고교 야구의 혹사 논란이 심해진 상황이라 이 완투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이 인권 침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 조사를 하는 것까지.[2] 그래서 이 일로 제법 유명해졌는데, 이 때 졸업 후에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대학에 가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프로에 데뷔하면서 "아, 그 때 그 투수구나." 하는 정도로 다시 대중들의 기억에 떠오르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이 인권 침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 조사를 하는 것까지.[2] 그래서 이 일로 제법 유명해졌는데, 이 때 졸업 후에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대학에 가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프로에 데뷔하면서 "아, 그 때 그 투수구나." 하는 정도로 다시 대중들의 기억에 떠오르게 되었다.
3. 프로 입단 후
1군에는 올라오지 못했고 2013년 초 구단 공홈의 선수 명단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알려진 바로는 수술 후 공익요원으로 입대했다고 하는데 두산 홈페이지 선수단 소개의 군 입대자에 들어있지 않았고 소집해제가 됐을 시점에서도 아무런 얘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야구를 그만 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