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익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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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왕자
익현군
翼峴君
익현군(翼峴君)[2]
충성(忠成)
전주(全州)
련(璉) / 곤(璭)
광지(光之)
부왕
생모
신빈 김씨(愼嬪 金氏)
부인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平壤趙氏)
자녀
1남 1녀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4리
생몰
기간
1. 개요2. 생애3. 사망과 이후4. 여담5. 가족과 후손


1. 개요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의 14남이자 서7남이다. 어머니 신빈 김씨에게는 4남이다.

2. 생애

1437년(세종 19년)에 익현군으로 책봉되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왔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세조는 자신을 지지한 익현군을 매우 아꼈는데 익현군이 병석에 누웠을 때 내의 김길호를 보내 간병하게 하기도 했다.#

3. 사망과 이후

1463년(세조 9년) 5월 21일에[3] 사망했다. 향년 32세.[4]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4리에 있다.

4. 여담

  • 1456년(세조 2년) 사육신의 난으로 처형당한 사람들의 가족들 중 부녀자들은 공신들의 노비로 전락했는데, 이 중 이담의 아내 소사, 박기년의[6] 아내 무작지, 이오의 딸 평동, 이유기의 누이 효전이 익현군의 노비로 들어왔다.#

5. 가족과 후손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딸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게 없다.

아들 괴산군 이지(槐山君 李漬)는 후사를 두지 못했다. 이후 괴산군의 양자로 익현군의 친형 의창군의 손자 화산군 이해(花山君 李諧)가 입적되었다.# 화산군은 3남 1녀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익현군파를 형성하고 있다.
[1] 군호는 강원도 양양군의 옛 지명인 ‘익현(翼峴)’에서 유래했다.[2] 군호는 강원도 양양군의 옛 지명인 ‘익현(翼峴)’에서 유래했다.[3] 음력 5월 4일.[4] 세는나이 33세.[5] 박팽년의 형.[6] 박팽년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