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의 황후
壽和聖福太后 | 수화성복태후 | |
수화성복태후(壽和聖福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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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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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道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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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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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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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남송의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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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년 ~ 12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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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의 황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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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년 ~ 12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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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의 태황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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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 ~ 12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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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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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사거백(謝渠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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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이종 재위기
영종이 1224년에 세상을 떠나고 이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맡은 공성인렬황후 양씨가 사심보에게 진 은혜를 갚고자 사심보의 집안에서 며느리를 간택하였다. 당시 이종은 귀비 가씨를 총애하여 가씨를 황후로 책봉하려고 했는데[2], 공성인렬황후의 반대로 처음에 통의군부인으로 봉했다가 이후 1227년에 귀비를 거쳐 황후로 책봉하였다. 사도청은 비록 황후로 책봉되었으나, 이종의 애정은 다른 귀비들에게 기울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사도청은 이를 질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종의 재위기는 외부적으로 금나라가 무너지고 몽골 제국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한 시기였는데, 이때 남송은 몽굴 제국과 연합하여 1234년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그 이후 남송과 몽골 제국의 40여 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된다.
이종의 재위기는 외부적으로 금나라가 무너지고 몽골 제국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한 시기였는데, 이때 남송은 몽굴 제국과 연합하여 1234년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그 이후 남송과 몽골 제국의 40여 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된다.
2.2. 도종 재위기
이종은 재위기간 동안 사도청과의 사이에서 기충소왕(沂沖昭王) 조유(趙惟)를 낳았으나 요절해버렸고, 다른 후궁들 소생의 아들들도 모두 요절해버렸다. 결국 이종은 자신의 친동생인 조여예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그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는데, 이렇게 조여예의 아들 조맹계가 조기로 이름을 개명하여 이종의 황태자가 되었는데, 훗날 조송의 제15대 황제인 도종이 된다.
1264년에 이종이 죽고 조기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사도청은 황태후로 추앙받아 수화성복태후(壽和聖福太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이때 남송의 정세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내부에서는 가사도가 국정 전반을 쥐고 있었고 외부에서는 남송과 원나라와의 40여 년에 걸친 공방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남송과 원나라의 전쟁은 6년에 걸친 양양 공방전에서 양양이 함락되면서 원나라에게 승세가 기울었고, 1274년에는 도종이 세상을 떠났다.
1264년에 이종이 죽고 조기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사도청은 황태후로 추앙받아 수화성복태후(壽和聖福太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이때 남송의 정세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내부에서는 가사도가 국정 전반을 쥐고 있었고 외부에서는 남송과 원나라와의 40여 년에 걸친 공방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남송과 원나라의 전쟁은 6년에 걸친 양양 공방전에서 양양이 함락되면서 원나라에게 승세가 기울었고, 1274년에는 도종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