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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의 문신
李廷龜
1564~1635
본관은 연안, 호는 월사(月沙)며 조선 선조 때의 신하이다. 1590년 증광시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중국어에 능하여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친 어려운 시기에 어전통관으로 명나라 사신이나 지원군을 접대할 때에 조선 조정을 대표하며 중요한 외교적 활약을 했다. 양호 사건과 정응태 무고 사태에 조선 조정이 휘말려서 명나라에게 대판 곤혹을 치르게 생겼을 때 이정구가 명 조정에 상신한 주문(奏文)으로 겨우 혐의를 벗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 국왕의 충간의담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는 평이 연려실기술에 실려 전한다고 한다.[1]
그의 문학 작품은 《월사집(月沙集)》으로 남아 있다.
신흠, 장유, 이식과 더불어 문장4대가, 월상계택(月象谿澤)으로 꼽혔다. 이는 네명의 호를 딴 것으로 이정구는 월月로 첫번째에 든다. [2]
조선 사람의 쌀밥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해당 항목 참조.
1564~1635
본관은 연안, 호는 월사(月沙)며 조선 선조 때의 신하이다. 1590년 증광시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중국어에 능하여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친 어려운 시기에 어전통관으로 명나라 사신이나 지원군을 접대할 때에 조선 조정을 대표하며 중요한 외교적 활약을 했다. 양호 사건과 정응태 무고 사태에 조선 조정이 휘말려서 명나라에게 대판 곤혹을 치르게 생겼을 때 이정구가 명 조정에 상신한 주문(奏文)으로 겨우 혐의를 벗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 국왕의 충간의담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는 평이 연려실기술에 실려 전한다고 한다.[1]
그의 문학 작품은 《월사집(月沙集)》으로 남아 있다.
신흠, 장유, 이식과 더불어 문장4대가, 월상계택(月象谿澤)으로 꼽혔다. 이는 네명의 호를 딴 것으로 이정구는 월月로 첫번째에 든다. [2]
조선 사람의 쌀밥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해당 항목 참조.
3.1. 후손
이정구의 후손들이 번성했는데 아들 이명한과 손자 이일상이 대제학에 올라 조선 최초 3대 대제학을 지낸 가문이 되었으며 이들의 후대는 노론의 명문가가 되어 노론의 영수인 이천보, 이존수 등을 배출하는 등 후손들이 번성했다. 심지어 이들은 번성하여 관동파를 만들기도 했으며 동촌 이씨라고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