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
| 이원영 (Lee Won-Young)
|
생년월일
| |
국적
| |
포지션
| |
신체
| 18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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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학교
| |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2000~2006)
경찰 축구단(2001~2003, 입대) 전북 현대(2007) 제주 유나이티드(2008) 부산 아이파크(2009~2011) 알이티파크(2011) 부산 아이파크(2013~2014) 파타야 유나이티드 FC(2015) 부산 아이파크(2016) 파타야 유나이티드 FC(2017~2018) 사뭇 사콘(2019~) |
1. 소개
2. 클럽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2000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는 19세라는 어린나이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십자인대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결국 이듬해 2001년 경찰청 축구단에 입소하게 된다.
2003년 경찰청축구단 전역 후 다시 포항스틸러스에 복귀하였지만 불행하게도 2004시즌 초반, 또다시 시즌 아웃에 가까운 부상을 당하며 좌절을 겪었다. 이후 1년간 재활을 거친 후, 2005년 부임한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에 의해 전격 발탁, 프로 데뷔 6년만에 1군 데뷔전을 치룸과 동시에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였다. 1군 도약 후, 좋은 하드웨어와 헤딩경합 능력으로 세트피스에서도 곧잘 득점을 기록하는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전천후 수비수로 명성을 높였다.
2003년 경찰청축구단 전역 후 다시 포항스틸러스에 복귀하였지만 불행하게도 2004시즌 초반, 또다시 시즌 아웃에 가까운 부상을 당하며 좌절을 겪었다. 이후 1년간 재활을 거친 후, 2005년 부임한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에 의해 전격 발탁, 프로 데뷔 6년만에 1군 데뷔전을 치룸과 동시에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였다. 1군 도약 후, 좋은 하드웨어와 헤딩경합 능력으로 세트피스에서도 곧잘 득점을 기록하는등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전천후 수비수로 명성을 높였다.
2.2. 전북 현대
2.3. 제주 유나이티드
2007년 시즌 종료 후 최강희 감독의 수비진 리빌딩 계획에 따라 이요한 선수와 1:1 트레이드 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제주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2.4. 부산 아이파크
2.5.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2011년 팀동료 김응진, 홍성요 등과 함께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
결국 2011년 6월 자진 신고를 했지만, 연맹은 영구제명과 함께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시간 300시간의 징계를 당하며 리그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의 알이티파크로 이적하였다. 알이티파크 구단은 그의 주장을 믿고 그를 영입 6개월간 그와 함께 하다 결국 FIFA의 전 세계적 지침으로 인해 그와 중도 계약해지를 하였다.
그렇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된 재판을 하였고, 2012년 6월 1일 돈은 받았으나 승부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사회를 열어 승부조작에 연루된 그를 비롯한 김응진, 홍성요의 영구제명징계를 풀었다.
결국 2011년 6월 자진 신고를 했지만, 연맹은 영구제명과 함께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시간 300시간의 징계를 당하며 리그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의 알이티파크로 이적하였다. 알이티파크 구단은 그의 주장을 믿고 그를 영입 6개월간 그와 함께 하다 결국 FIFA의 전 세계적 지침으로 인해 그와 중도 계약해지를 하였다.
그렇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된 재판을 하였고, 2012년 6월 1일 돈은 받았으나 승부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사회를 열어 승부조작에 연루된 그를 비롯한 김응진, 홍성요의 영구제명징계를 풀었다.
2.6. 부산 아이파크 2기
이원영은 영구제명 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운동을 했었는데, 그렇게 긴 시간 혼자서 몸을 만들고 유지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주장했던 무죄를 선고 받은뒤 2013년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파크로 복귀 할 수 있었으며, 1년 6개월간 팀 없이 혼자서 컨디션을 유지 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복귀 후 전성기의 기량 못지 않은 활약으로 13년도 리그와 컵 대회를 소화 하였다.
동료들과 후배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그는 팀 내에서 개인관리및 프로정신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로 평이 나있었다.그렇게 그는 그것을 뒷받침 하듯 팀의 상위 스플릿 진출의 기여와 또 본인의 최고의 해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며, 2013년~2015년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다.
동료들과 후배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그는 팀 내에서 개인관리및 프로정신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로 평이 나있었다.그렇게 그는 그것을 뒷받침 하듯 팀의 상위 스플릿 진출의 기여와 또 본인의 최고의 해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며, 2013년~2015년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다.
2.7. 파타야 유나이티드
2.8. 부산 아이파크 3기
시즌 후 그는 다시 부산의 요청으로 2016년 부산아이파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 소식을 접한 뒤 파타야 측의 잔류 요청에도 부산행을 결정했다고하며, 2016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1년간 그는 이렇다 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으며, 부산은 승격에 실패하였다.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 소식을 접한 뒤 파타야 측의 잔류 요청에도 부산행을 결정했다고하며, 2016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1년간 그는 이렇다 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으며, 부산은 승격에 실패하였다.
2.9. 태국 무대 복귀
시즌 종료 후 2017년 다시 태국 프리미어리그 파타야 유나이티드로 재입단하였으며, 2019년 사뭇 파콘으로 이적하였다.
3. 여담
- 2013년 이름을 이정호에서 이원영으로 개명하였다. 개명 이후 부산에서 주장을 맡는 등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을 본 팀의 막내급 후배 이정기가 개명을 결심하는 데에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배는 개명 이후 국가대표까지 승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