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
2. 조선 단종 때의 문신이자 세조~중종때의 은둔자
2.1. 생애
이수형(李秀亨, 1435 ~ 1528)[2]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별호는 공북헌(拱北軒), 본관은 우계.
아버지는 군자감] 주부 이경창이고, 어머니는 순흥 안씨이다. 이순지와 함께 세종 때의 관상감, 천문학자였던 문절공 김담의 사위이다.
18세에 음서 제도로 관직에 나가 선교랑 전생서령[3]을 거쳐 조봉대부 평시서령[4]이 되었다. 1455년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사퇴했다.
그뒤 관란 원호, 어계 조여 등과 함께 영월 수주면의 요선정에 모여서 단종의 안위와 국사를 논하고, 단종에게 문안인사를 하기도 했다. 원주시 치악산 정상에 올라가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바위에 원호, 조여와 함께 이름을 새기고 내려왔다. 그뒤 처가가 있는 봉화군 도촌으로 내려가서 마을을 개척하고 은거했다.[5]
호를 도촌이라 했는데 이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단종이 사사되자 단종의 3년상을 마친 뒤, 산으로 들어가 삼면은 벽이고 북쪽을 향해 문이 하나 있는 집을 짓고 평생을 숨어살았는데, 북쪽은 단종의 능침인 장릉이 있는 곳이다. 훗날 창설 권두경과 눌은 이광정은 여기에 감동하여 각각 행장과 유기, 현판을 남겼다. 성종 때 다시 직첩이 내려졌는데 역시 거절하였다. 70년간 은거하다가 1528년 94세로 사망했다.
일평생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은거한 것에 감동하여 창설 권두경은 천인실(千仞室)이라는 현판과 행장, 유기를 남겼고, 눌은 이광정은 공북헌이라는 현판과 행장, 유기를 직접 썼다고 한다.
철종 때 경상도암행어사로 왔던 담재 임응준(任應準)이 이를 상소하여 1858년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됐다가 다시 1864년 고종 때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가 추증되었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별호는 공북헌(拱北軒), 본관은 우계.
아버지는 군자감] 주부 이경창이고, 어머니는 순흥 안씨이다. 이순지와 함께 세종 때의 관상감, 천문학자였던 문절공 김담의 사위이다.
18세에 음서 제도로 관직에 나가 선교랑 전생서령[3]을 거쳐 조봉대부 평시서령[4]이 되었다. 1455년 단종이 삼촌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사퇴했다.
그뒤 관란 원호, 어계 조여 등과 함께 영월 수주면의 요선정에 모여서 단종의 안위와 국사를 논하고, 단종에게 문안인사를 하기도 했다. 원주시 치악산 정상에 올라가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바위에 원호, 조여와 함께 이름을 새기고 내려왔다. 그뒤 처가가 있는 봉화군 도촌으로 내려가서 마을을 개척하고 은거했다.[5]
호를 도촌이라 했는데 이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단종이 사사되자 단종의 3년상을 마친 뒤, 산으로 들어가 삼면은 벽이고 북쪽을 향해 문이 하나 있는 집을 짓고 평생을 숨어살았는데, 북쪽은 단종의 능침인 장릉이 있는 곳이다. 훗날 창설 권두경과 눌은 이광정은 여기에 감동하여 각각 행장과 유기, 현판을 남겼다. 성종 때 다시 직첩이 내려졌는데 역시 거절하였다. 70년간 은거하다가 1528년 94세로 사망했다.
일평생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은거한 것에 감동하여 창설 권두경은 천인실(千仞室)이라는 현판과 행장, 유기를 남겼고, 눌은 이광정은 공북헌이라는 현판과 행장, 유기를 직접 썼다고 한다.
철종 때 경상도암행어사로 왔던 담재 임응준(任應準)이 이를 상소하여 1858년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됐다가 다시 1864년 고종 때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