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생애
1872년 2월 13일,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온면의 양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고, 1896년에 농상공부 기사로 관계에 입문하여, 1903년 내부 광제원에서 판임관 6등의 주사를 지내는 등 관리로 근무했다.
1905년에는 보성전문학교 법률과에 1기로 입학하여 1907년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보성전문학교 학감으로 있으면서, 육군법원 이사와 육군감옥장, 군부 군무국 군법과 이사를 역임하는 등 법률가로 잠시 활동하였다가, 보성전문학교장을 지냈다.
천도교의 신자로서 1919년 3.1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 사장을 맡아, 이를 천도교 인쇄사인 보성소에서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3·1 운동 이후 발족한 임시정부 중 하나인 조선민국임시정부의 법무경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러다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1920년 9월 출옥 후 1920년 11월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경성도서관을 창립하였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간도 용정촌에서 간도동흥중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한인 자녀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청년들에게 혁명정신을 심어줌으로써 많은 혁명전사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1936년 이후로는 변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라누마 에이치(平沼榮一)로 창씨개명 한 것이야 으레 하던 일이지만 대동일진회에 교장으로 부임한 것은 빼박. 이로 인해 1962년 서훈되었던 건국훈장 국민장이 2010년 취소되었고, 묘역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소에서 이장되었다.
1905년에는 보성전문학교 법률과에 1기로 입학하여 1907년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보성전문학교 학감으로 있으면서, 육군법원 이사와 육군감옥장, 군부 군무국 군법과 이사를 역임하는 등 법률가로 잠시 활동하였다가, 보성전문학교장을 지냈다.
천도교의 신자로서 1919년 3.1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지하 신문인 '조선독립신문' 사장을 맡아, 이를 천도교 인쇄사인 보성소에서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3·1 운동 이후 발족한 임시정부 중 하나인 조선민국임시정부의 법무경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러다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1920년 9월 출옥 후 1920년 11월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경성도서관을 창립하였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간도 용정촌에서 간도동흥중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한인 자녀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청년들에게 혁명정신을 심어줌으로써 많은 혁명전사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1936년 이후로는 변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라누마 에이치(平沼榮一)로 창씨개명 한 것이야 으레 하던 일이지만 대동일진회에 교장으로 부임한 것은 빼박. 이로 인해 1962년 서훈되었던 건국훈장 국민장이 2010년 취소되었고, 묘역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소에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