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윌리 킬러 (William Henry Keeler)
|
생몰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뉴욕 주 브루클린
|
포지션
| |
투타
| 우투좌타
|
소속 팀
|
헌액 연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5.55% (4회)
|
1. 소개
2. 선수 시절
1872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윌리 킬러는 1892년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데뷔 초에는 팀의 백업 멤버로서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으나 189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위에서 말했듯이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에 입단하면서 팀의 주전으로 뛰게 된다.
풀타임 첫 해,윌리 킬러는 타율 .371 219안타 94타점을 기록했다.윌리 킬러의 활약 덕에 전 시즌까지만 해도 8위에 그쳤던 오리올스는 창단 이후 첫 리그우승을 치지했다.이후로도 윌리 킬러는 꾸준히 활약하며 오리올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거,1897년과 1898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으며1897년에는 타율 .424로[5] 4할 타자가 되는 등 맹활약했다.또한 1896년 최종전과 1897시즌을 걸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속 안타 2위인 45경기 안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6] 조 디마지오가 경신하기 전까지 계속 최고기록으로 유지됐으며 디마지오가 이를 경신할때 "디마지오가 윌리 킬러 기록을 깼다"는 게 미국내 큰 화제였다.
1899년 브루클린 슈퍼배스로 이적한 윌리 킬러는 1901년까지 200안타를 치면서 메이저리그 130년간 전무후무한 8년 연속 200안타를[7] 기록했다.이후 1903년 볼티모어 오리올스[8]로 이적해 1906년까지 3할을 기록하며 15년 연속 3할을 치며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하지만 1907년 개인 최저 타율인 .234를 기록하는 등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다가 1910년을 마지막으로 3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풀타임 첫 해,윌리 킬러는 타율 .371 219안타 94타점을 기록했다.윌리 킬러의 활약 덕에 전 시즌까지만 해도 8위에 그쳤던 오리올스는 창단 이후 첫 리그우승을 치지했다.이후로도 윌리 킬러는 꾸준히 활약하며 오리올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거,1897년과 1898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으며1897년에는 타율 .424로[5] 4할 타자가 되는 등 맹활약했다.또한 1896년 최종전과 1897시즌을 걸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속 안타 2위인 45경기 안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6] 조 디마지오가 경신하기 전까지 계속 최고기록으로 유지됐으며 디마지오가 이를 경신할때 "디마지오가 윌리 킬러 기록을 깼다"는 게 미국내 큰 화제였다.
1899년 브루클린 슈퍼배스로 이적한 윌리 킬러는 1901년까지 200안타를 치면서 메이저리그 130년간 전무후무한 8년 연속 200안타를[7] 기록했다.이후 1903년 볼티모어 오리올스[8]로 이적해 1906년까지 3할을 기록하며 15년 연속 3할을 치며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하지만 1907년 개인 최저 타율인 .234를 기록하는 등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다가 1910년을 마지막으로 3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3. 은퇴 후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윌리 킬러
| 20
| 168
| 189
| 49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26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윌리 킬러
| 54.0
| 36.2
| 45.1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3.2
| 43.0
| 58.1
|
5. 둘러보기
[1]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2]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3] 사실 미국은 체격 대성장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중반에도 국민 신장이 많이 커지지 않은 나라였다. 당시 미국인 평균 키는 현재 한국인 평균키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니 운동선수임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시대의 일반인치고도 상당히 작았던 것. 한국으로 치면 김선빈이 리그 최고의 스타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4] Wee는 작은,조그마한 이라는 뜻이다.[5] 메이저리그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6] 1위는 1941년 조 디마지오가 기록한 56경기 연속 안타.[7] 이 기록은 약 100년 후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소속으로 2001년~2009년 9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할때까지 신기록이었다. 이치로는 2010년에도 200안타이상을 기록해 현재 MLB기록은 이치로의 10년연속 200안타이다. 그래도 미국인이 기록한 연속 200안타 기록은 아직까지 1위이다.[8] 현 뉴욕 양키스의 전신.[9] 사이 영이 9년간 뛰었던 팀으로 현재는 사라진 내셔널리그 야구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참고로 제시 버켓도 이 시즌에 4할 타자다.[10] 이 사람도 4할 타자. 원래 4할 타자는 내셔널 리그 원년 1876년의 로스 반스 이후 전혀 안 나오던 희귀 기록(캡 앤슨이 .399를 기록한 적은 있다.)인데, 이 시기에 희한하게 딱 1894~1899년까지 내셔널 리그에서 4할 타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아메리칸 리그 원년의 냅 라조이가 1901년 기록한 뒤, 타이 콥과 조 잭슨이 함께 4할을 기록할 때까지 한 동안 안 나왔다. 이후 1930년 내셔널리그의 빌 테리가 4할을 기록한 후, 1941년 누구나 다 아는 출루의 신이 4할을 기록한 후 80년 간 나오지 않고 있다.[11] 사이 영이 9년간 뛰었던 팀으로 현재는 사라진 내셔널리그 야구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참고로 제시 버켓도 이 시즌에 4할 타자다.[12] 이 사람도 4할 타자. 원래 4할 타자는 내셔널 리그 원년 1876년의 로스 반스 이후 전혀 안 나오던 희귀 기록(캡 앤슨이 .399를 기록한 적은 있다.)인데, 이 시기에 희한하게 딱 1894~1899년까지 내셔널 리그에서 4할 타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아메리칸 리그 원년의 냅 라조이가 1901년 기록한 뒤, 타이 콥과 조 잭슨이 함께 4할을 기록할 때까지 한 동안 안 나왔다. 이후 1930년 내셔널리그의 빌 테리가 4할을 기록한 후, 1941년 누구나 다 아는 출루의 신이 4할을 기록한 후 80년 간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