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원 제3대 황제
天元帝 | 천원제 | |
몽골 제국 제17대 대칸
ᠤᠰᠠᠬᠠᠯ ᠬᠠᠭᠠᠨ 우스칼 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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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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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성영효황제(益聖寧孝皇帝)
평황제(平皇帝) | |
우스칼 칸(Uskal Khan)
(兀思哈勒汗 / 올사합륵한) ᠤᠰᠠᠬᠠᠯ ᠬᠠᠭᠠᠨ | |
테구스테무르(Tegüstemür)
(脫古思帖木兒 / 탈고사첩목아) ᠲᠥᠭᠥᠰᠲᠥᠮᠥᠷ | |
천원(天元) : 1379년 ~ 13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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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1342년 ~ 1388년 (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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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 1378년 ~ 1388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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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원혜종 토곤테무르의 4남이며, 어머니는 바야우트 씨이다. 원소종의 이복동생으로, 익왕으로 불렸다.
1378년, 형인 소종 사후 그의 유조에 따라 조카들을 대신해 황제로 즉위했다. 그의 재위기간 동안 북원은 끊임없이 중원 회복을 노리며, 계속 명나라를 북방에서 압박하였는데, 잘라이르부의 나하추는 소종이 재위할 때에는 북원에 협력했지만, 1387년에 결국 명의 공격을 받자 항복을 택하여 해서후에 봉해졌다.
북원의 우익 역할을 든든히 해주고 있었던 나하추의 명 투항으로 인해 북원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결국 1388년 그는 부이르 누르 동북부에서 남옥이 이끄는 명나라의 15만 대군에게 습격을 당했고, 이에 도주하여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가 투울 강 근처에서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예수데르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1378년, 형인 소종 사후 그의 유조에 따라 조카들을 대신해 황제로 즉위했다. 그의 재위기간 동안 북원은 끊임없이 중원 회복을 노리며, 계속 명나라를 북방에서 압박하였는데, 잘라이르부의 나하추는 소종이 재위할 때에는 북원에 협력했지만, 1387년에 결국 명의 공격을 받자 항복을 택하여 해서후에 봉해졌다.
북원의 우익 역할을 든든히 해주고 있었던 나하추의 명 투항으로 인해 북원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결국 1388년 그는 부이르 누르 동북부에서 남옥이 이끄는 명나라의 15만 대군에게 습격을 당했고, 이에 도주하여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가 투울 강 근처에서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예수데르에게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3. 북원의 멸망
[1] 원의 존속기를 천원제까지 늘린다면 1271 ~ 1388까지로 총 117년의 역사를 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이 북원의 멸망을 몽골 제국의 멸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북원이라는 국가 체제는 멸망했으나 기존 영토를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승계하여 사실상 후대에도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몽골은 자신들을 종종 북원이라 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