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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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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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원경(元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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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중시조
| 원천석(元天錫)
원극유(元克猷) 원익겸(元益謙) | ||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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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26,677명(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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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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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주 원씨(原州 元氏)는 강원도 원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당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한 8학사(學士) 중 한명인 원경(元鏡)이다. 그는 당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고구려에 와서 두 나라의 국교 회복과 고구려 보장왕(寶藏王)의 책봉에 힘썼으므로 보장왕이 그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하였다.
원씨의 본관은 문헌에 의하면 40여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원주 단일 본으로 전한다.
운곡공계(耘谷公系: 원경), 원성백계(原城伯系: 원극유), 시중공계(侍中公系: 원익겸) 세 계통으로 계대하고 있다.
원주 원씨는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상당한 명문가로 여흥 민씨, 장동 김씨, 파평 윤씨, 풍양 조씨와 동급으로 어마무지한 서열을 자랑하는 성씨였다. 실제로도, 이성계의 후궁인 성비 원씨와 광해군의 후궁인 숙의 원씨도[1] 원주 원씨였다. 하지만 이후에 선조대에 이르러 원균이라는 한국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졸장을 배출하는바람에 가문의 명성을 모조리 말아먹었다.
또한 원주 원씨는 원래부터 무인(武人)의 가문이었는데 이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도 유효한 게 원인철이 합동참모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주 원씨가 명망높은 무인 가문이었던 탓에 원균이 가문빨로 경상우수사에 오른 흑역사 역시 존재한다.
시조는 당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한 8학사(學士) 중 한명인 원경(元鏡)이다. 그는 당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고구려에 와서 두 나라의 국교 회복과 고구려 보장왕(寶藏王)의 책봉에 힘썼으므로 보장왕이 그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하였다.
원씨의 본관은 문헌에 의하면 40여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원주 단일 본으로 전한다.
운곡공계(耘谷公系: 원경), 원성백계(原城伯系: 원극유), 시중공계(侍中公系: 원익겸) 세 계통으로 계대하고 있다.
원주 원씨는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상당한 명문가로 여흥 민씨, 장동 김씨, 파평 윤씨, 풍양 조씨와 동급으로 어마무지한 서열을 자랑하는 성씨였다. 실제로도, 이성계의 후궁인 성비 원씨와 광해군의 후궁인 숙의 원씨도[1] 원주 원씨였다. 하지만 이후에 선조대에 이르러 원균이라는 한국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졸장을 배출하는바람에 가문의 명성을 모조리 말아먹었다.
또한 원주 원씨는 원래부터 무인(武人)의 가문이었는데 이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도 유효한 게 원인철이 합동참모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주 원씨가 명망높은 무인 가문이었던 탓에 원균이 가문빨로 경상우수사에 오른 흑역사 역시 존재한다.
2. 분파
운곡파의 원경은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파견된 8학사 중의 한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한국 원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백파의 원극유는 고려를 개국할 때 공을 세워 통합 삼한벽상 개국익찬일등공신으로 정의대부 병부령을 지냈으며 원성백에 봉해졌다.
시중공파의 원익겸은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시랑을 역임하여 원주를 본관을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이 외에 상호군을 지낸 원충갑을 시조로 하는 충숙공계가 있었으나, 원충갑이 원성백계의 원극유의 11세손임이 밝혀져 원성백계와 합보되었다.
각 계통의 의견이 달라 합보간행은 못하고 있지만 원경을 시조로 하는 단일본임은 일치를 보았다.
시중공파의 원익겸은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시랑을 역임하여 원주를 본관을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이 외에 상호군을 지낸 원충갑을 시조로 하는 충숙공계가 있었으나, 원충갑이 원성백계의 원극유의 11세손임이 밝혀져 원성백계와 합보되었다.
각 계통의 의견이 달라 합보간행은 못하고 있지만 원경을 시조로 하는 단일본임은 일치를 보았다.
3. 항렬
3.1. 운곡파
35세
| 태(泰)○
|
36세
| 현(顯)○
|
37세
| ○규(圭)
|
38세
| ○호(鎬)
|
39세
| 영(永)○
승(承)○ |
40세
| ○식(植)
○직(稙) |
41세
| ○묵(默)
○훈(勳) |
42세
| 치(致)○
교(敎)○ |
43세
| 종(鍾)○
용(鏞)○ |
44세
| ○구(求)
○수(洙) |
45세
| 동(東)○
상(相)○ |
46세
| ○우(禹)
○노(魯) |
47세
| 혁(赫)○
철(喆)○ |
48세
| ○회(會)
○선(善) |
49세
| 태(泰)○
제(濟)○ |
50세
| ○수(秀)
○목(穆) |
51세
| 병(炳)○
형(炯)○ |
52세
| ○균(均)
○기(基) |
53세
| 상(商)○
정(正)○ |
54세
| ○준(浚)
○택(澤) |
55세
| 인(寅)○
진(震)○ |
56세
| ○열(烈)
○섭(燮) |
3.2. 원성백파
29세
| 후(厚)○
|
30세
| ○의(義)
|
31세
| 제(濟)○
|
32세
| ○식(植)
|
33세
| 유(裕)○
|
34세
| ○재(載)
|
35세
| 종(鍾)○
|
36세
| ○호(浩)
|
37세
| 영(榮)○
|
38세
| ○성(性)
|
39세
| 규(圭)○
|
40세
| ○석(錫)
|
41세
| 윤(潤)○
|
42세
| ○동(東)
|
43세
| 현(顯)○
|
44세
| ○배(培)
|
45세
| 진(鎭)○
|
46세
| ○수(洙)
|
47세
| 상(相)○
|
48세
| ○용(容)
|
49세
| 중(重)○
|
50세
| ○호(鎬)
|
3.3. 시중공파
23세
| ○석(錫)
|
24세
| 세(世)○
|
25세
| ○상(常)
|
26세
| 용(容)○
|
27세
| ○희(憙)
|
28세
| 종(鍾)○
|
29세
| ○연(淵)
|
30세
| 동(東)○
|
31세
| ○섭(燮)
|
32세
| 치(致)○
|
33세
| ○선(善)
|
34세
| 태(泰)○
|
35세
| ○모(模)
|
36세
| 병(丙)○
|
37세
| ○기(基)
|
38세
| 현(鉉)○
|
39세
| ○영(泳)
|
40세
| 주(柱)○
|
41세
| ○열(烈)
|
42세
| 재(載)○
|
43세
| ○용(鎔)
|
44세
| 홍(洪)○
|
45세
| ○근(根)
|
46세
| 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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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4.1. 과거
- 원천석(元天錫) : 운곡파. 고려말 초야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며, 고려의 대문장가로 학문과 문장이 당세에 유명하여 이방원(조선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으나 고려의 충신이었다..
- 성비 원씨(誠妃 元氏) : 운곡파. 조선 태조의 후궁
- 원호(元昊) : 시중공파. 조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 조선의 생육신 중 한 사람
- 원사웅(元士雄) : 원성백파. 원균의 아들이자 부관.
- 원호(元豪) : 시중공파. 임진왜란 때 아들 원유남과 함께 무명을 떨쳤고 구미포(龜尾浦),마탄(馬灘), 운무(雲霧) 등지의 작전에서 전공을 올려 적을 여주에서 완전히 봉쇄했다.
- 원두표(元斗杓) : 시중공파. 인조반정 때 세운 공으로 정사공신 2등에 책록, 원평부원군이 되었고 형조참판, 호조판서, 좌참찬, 병조판서 등을 지내고, 1656년 우의정을 거쳐 1662년 좌의정에 올랐다.
- 원경하(元景夏) : 시중공파. 조선 영조 때 이조 및 병조의 판서를 역임했다.
- 원인손(元仁孫) : 시중공파. 조선 영조 때 우의정을 지냈다.
4.1.1. 독립운동가
- 건국훈장 독립장(구 국민장) 수훈자
-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자
-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