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시베리아의 코사크 정착촌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또는 우크라이나인 후손들이다. 원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공국을 기원으로 하는 같은 나라였으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서로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루스 차르국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사회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러시아 제국 말 공식적인 인구 통계 조사가 이루어진 시점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항상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이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본국이 독립해 나가면서 러시아 공화국 내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은 공식적인 통계 상으로는 러시아인과 타타르인 다음으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 되었다.
2. 거주 지역
3. 상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언어, 문화, 종교 등 모든면에서 매우 가깝다보니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 중에는 러시아인으로 거의 동화되었거나 우크라이나인 혈통을 가진 러시아인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전성기에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이종격투기 선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는 본래 우크라이나계지만, 러시아 국기를 두르는 세리머니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초청을 받은 일화 등을 생각하면 그의 정체성은 확고한 러시아인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듯 하다.
과거 루스 차르국에서는 같이 정교회를 믿는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가톨릭 강요의 압제에 맞서 구원한다는 주장 하에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도움을 얻어 우크라이나 영토에 절반을 장악하였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3차에 걸친 폴란드 분할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자카르파탸 지역 외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일대의 영토를 장악한 이후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제한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탄압하였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인 유명 인사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어 대신에 러시아어로 글을 쓰고 활동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장기간의 동화 정책은 심지어 소련 시절에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간의 통혼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일례로 러시아인 중 조부모나 부모 중 한 쪽이 우크라이나계가 아닌 경우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하는데, 특히 시베리아 지역으로 가면 러시아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계 성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국이 키예프 공국을 뿌리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가깝지만, 2010년대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가 안 좋아지고 있어서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러시아와 차이점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루스 차르국에서는 같이 정교회를 믿는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가톨릭 강요의 압제에 맞서 구원한다는 주장 하에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도움을 얻어 우크라이나 영토에 절반을 장악하였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3차에 걸친 폴란드 분할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자카르파탸 지역 외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일대의 영토를 장악한 이후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제한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탄압하였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인 유명 인사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어 대신에 러시아어로 글을 쓰고 활동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장기간의 동화 정책은 심지어 소련 시절에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간의 통혼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일례로 러시아인 중 조부모나 부모 중 한 쪽이 우크라이나계가 아닌 경우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하는데, 특히 시베리아 지역으로 가면 러시아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계 성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국이 키예프 공국을 뿌리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가깝지만, 2010년대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가 안 좋아지고 있어서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러시아와 차이점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4. 문화
5. 러시아의 카자크
6. 관련 문서
[1] 카자크는 러시아어 명칭이며 우크라이나어로 하면 상술한 것처럼 코사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