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소개
2. 생애
그는 관중(管仲)과 더불어 제환공(齊桓公)을 보좌했다. 그리하여 패자로 이끄는데 공헌했다. 관중의 추천으로 사마가 되었다. 열국지에 의하면 고죽국을 칠때 참여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가 왕손이라는 저서를 지었으나 그것은 실전되고 말았다.[5]
제소공 17년(기원전 616년) 가을 북적의 수만족이 송나라를 침략해 송나라의 장구 땅에서 이겼다. 그리고 노나라에 쳐들어갔고, 이에 제 소공은 왕자 성보를 보내 주무 땅에서 그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제 소공은 그에게 왕씨 성을 내렸다. 그가 바로 희성 계열 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제혜공 2년(기원전 607년) 왕자 성보는 장적 땅에 침입한 수만의 무리를 박살냈다. 그리고 역사에 더 나오지 않는다.
제소공 17년(기원전 616년) 가을 북적의 수만족이 송나라를 침략해 송나라의 장구 땅에서 이겼다. 그리고 노나라에 쳐들어갔고, 이에 제 소공은 왕자 성보를 보내 주무 땅에서 그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제 소공은 그에게 왕씨 성을 내렸다. 그가 바로 희성 계열 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제혜공 2년(기원전 607년) 왕자 성보는 장적 땅에 침입한 수만의 무리를 박살냈다. 그리고 역사에 더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