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1기 실링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깨지고 난 후인 1924년 12월 20일 제정된 실링통화법안(Schillingrechnungsgesetz)에 의해 기존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네를 대체하는 통화로서 등장했다. 교환비는 10,000크로네 = 1실링. 하지만 1938년 안슐루스로 인해 2 라이히마르크 = 3 실링의 비율로 강제전환당하며 막을 내렸다.
2. 2기 실링
1945년 독일제국 패망 이후부터 유로화 전환 직전인 2001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통화. ISO 4217코드는 ATS, 기호는 S 혹은 Ös, 보조단위로 그로셴(Groschen)이 있었다. 최종 인플레이션은 2%. 유로화와의 교환비는 13.7603실링/EUR이고, 반대로 지난 통화였던 제국마르크와의 교환비는 1:1로 해주되 150실링을 한도로 두었다. 이는 제국마르크의 괴멸적인 폭락으로 인해 통화 자체가 바닷물처럼 넘쳐나다보니 정부측에서 아예 계산을 포기하고 한 사람당 150실링씩 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일 정도다.
이후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이 공표되고,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교환하며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1950년의 환율은 26실링/USD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브레튼우드 시스템을 포기하면서 흔들릴 조짐이 보이니 오스트리아 실링은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1976년 7월)
이후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이 공표되고,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교환하며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1950년의 환율은 26실링/USD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브레튼우드 시스템을 포기하면서 흔들릴 조짐이 보이니 오스트리아 실링은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197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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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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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
| 모리츠 미카엘 다핑거
| 알베르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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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
| 조세피넘(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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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00
| 오이겐 폰 바베르크
| 국립과학대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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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0
| 오토 바그너
| 우체국 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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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000
| 빈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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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00
| 국립음악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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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bgcolor="#ADD8E6"><tablewidth=100%>
| 앞면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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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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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
| 이다 파이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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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00
| 연주회를 갖는 슈베르트, 피아노, 미완성 교향곡 자필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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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0
| 로자 마이레더
| 오스트리아 부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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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000
| 칼 란트슈타이너
| 빈 대학교 병리해부학연구소에서 현미경 관찰중인 슈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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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5,000
|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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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 1000실링을 제외한 나머지는 실물로 등장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원래 유통시킬 계획이었지만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무산되었다고. 일단 20, 50, 100, 5000실링의 경우 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나중에 오스트리아에서 화폐 전시회에서도 소개된 걸 보면 페이크는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