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로도 불린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믿지 않았다가, 십자가 사건이 있은 후에는 사도들과 함께 행동하였다. 예루살렘 기독교회의 좌장이 되었으며, 정교회에서는 그를 첫 번째 예루살렘 총대주교로 본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후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에게 투석형으로 사형당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초기 교회사에서는 12사도 대부분은 물론 베드로나 바오로 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그 바오로가 교회의 기둥으로 베드로, 요한보다 야고보를 먼저 꼽았을 정도.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대표자로 베드로조차 이방인과 가깝게 지내다가도 그의 눈치를 봐 물러나기도 할 정도였으며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최종적인 결정도 그가 내리는 등 그 시점에서 사실상 수장의 권위를 가졌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와 반대되는 유대계 기독교인의 리더였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초기 교회사에서는 12사도 대부분은 물론 베드로나 바오로 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다. 그 바오로가 교회의 기둥으로 베드로, 요한보다 야고보를 먼저 꼽았을 정도.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대표자로 베드로조차 이방인과 가깝게 지내다가도 그의 눈치를 봐 물러나기도 할 정도였으며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최종적인 결정도 그가 내리는 등 그 시점에서 사실상 수장의 권위를 가졌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와 반대되는 유대계 기독교인의 리더였다고 할 수 있다.
3. 성서 속 야고보의 행적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마 13 : 55 ; 막 6 : 3 ; 갈 1 : 19).
- 다른 사도들이 전도 여행을 다니던 동안,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지도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행 15 : 13-21).
- 이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이미 순교를 당한 후였다(행 12 : 2).
- 실제로 야고보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예수님의 동생으로 성도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었음이 틀림없다.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매우 설득력있고 타당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이방인의 할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행 15 : 13).
-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지 얼마 되지않아 예루살렘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야고보와 맨처음 상면하였다(갈 1 : 19 ; 참조. 2 : 9, 12).
- 그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도 야고보를 만났었다(행 21 : 18).
- 바울에게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권면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고보였다(행 21 : 17-26).
- 안디옥에 있던 베드로를 돕기 위하여 야고보는 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갈 2 : 12).
- 감옥에서 풀려나온 베드로는 자기의 석방 소식을 먼저 야고보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행 12 : 17).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처음부터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진리를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참조. 요 7 : 5).
- 그러나 십자가 사건이 있은 후에는 사도들과 함께 행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행 1 : 14).
- 따라서 고전 15 : 7에 언급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임이 분명하다.또한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인 것 같다. 그는 구약에 대하여 매우 정통했던 인물이었음이 들림없다(행 21 : 17-26 ; 갈 2 : 12).
[1] 로마 가톨릭에서는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견해를 부인하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였다는 교리를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를 내세운다. 그 하나는 야고보가 예수님 조카였다는 견해이며, 또 하나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전처의 소생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야고보라는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