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의 왕자
영해군 寧海君 | ||
영해군(寧海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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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安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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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덕대부(昭德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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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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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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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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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 신빈 김씨(愼嬪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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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 임천군부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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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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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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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가족과 후손
[1] 군호는 경상도 영해군(寧海郡)에서 유래했다.[2] 군호는 경상도 영해군(寧海郡)에서 유래했다.[3] 선원록에 따르면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과 같은 이름으로 고쳤다지만 「조선시대 태실의 역사고고학적 연구」(홍성익,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pp.13)에 따르면 장(璋)과 당(瑭)의 태실이 따로 있으며 당(瑭)의 태지석에 황명(皇明) 정통 7년 임술 7월 24일 인시 생(生)으로 나와서 1435년 생인 영해군과 다른 왕자일 수 밖에 없다. 애당초 선원록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졌고 숙종의 치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만든 것인지라 임진왜란 앞의 계보는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여 당(瑭)이 왕자의 이름으로 쓰였음을 인지할 수 밖에 없음에도 왜 영조가 풍계군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알 수 없다.[4] 더군다나 명태조와 이름이 겹친다.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면서 왜 창업천자의 휘를 왕자의 이름으로 썼는지 알 수 없다.[5] 충선왕과 이름이 같다.[6] 선원록에 따르면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과 같은 이름으로 고쳤다지만 「조선시대 태실의 역사고고학적 연구」(홍성익,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5, pp.13)에 따르면 장(璋)과 당(瑭)의 태실이 따로 있으며 당(瑭)의 태지석에 황명(皇明) 정통 7년 임술 7월 24일 인시 생(生)으로 나와서 1435년 생인 영해군과 다른 왕자일 수 밖에 없다. 애당초 선원록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완전히 불에 타서 없어졌고 숙종의 치세에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만든 것인지라 임진왜란 앞의 계보는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덧붙여 당(瑭)이 왕자의 이름으로 쓰였음을 인지할 수 밖에 없음에도 왜 영조가 풍계군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알 수 없다.[7] 더군다나 명태조와 이름이 겹친다.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면서 왜 창업천자의 휘를 왕자의 이름으로 썼는지 알 수 없다.[8] 충선왕과 이름이 같다.[9] 음력 5월 5일.[10] 세는나이 4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