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두아르도 레예스 오티스 벨라스코
(Eduardo Reyes Ortíz Velasco)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불명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공격수
|
신체조건
| 160cm / 6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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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4]
|
소속팀
| |
국가대표
| 1경기 / 0골 (1930)
|
1. 생애
오티스는 1910년까지 영국에서 살았고 트리니티 대학교[6] 부속학교에서 축구를 접했다. 그리고 이 당시 사우스햄튼 FC에서 잠시 뛰기도 했다. 정확하게 경기를 뛴 기록까지는 없지만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오티스는 유럽 축구팀에 입단한 최초의 남미 출신 축구 선수가 된다. 1913년, 오티스는 칠레에 건너갔고 이곳에서 더 효율적인 축구를 배웠다.
1917년, 오티스는 볼리비아로 돌아가서 더 스트롱기스트라는 클럽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20년을 활동했으며 10년 넘는 세월 동안 팀의 주장을 맡기도 하였다. 한편 커리어 중 차코 전쟁[7]에 참전하기도 한 관계로 2년의 공백기가 있다. 오티스는 1937년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으로는 단 한경기에 출전했는데, 초대 월드컵의 두 번째 경기인 브라질전이 바로 그것이다. 볼리비아는 브라질에게 4대0으로 대패했다.
1917년, 오티스는 볼리비아로 돌아가서 더 스트롱기스트라는 클럽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20년을 활동했으며 10년 넘는 세월 동안 팀의 주장을 맡기도 하였다. 한편 커리어 중 차코 전쟁[7]에 참전하기도 한 관계로 2년의 공백기가 있다. 오티스는 1937년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으로는 단 한경기에 출전했는데, 초대 월드컵의 두 번째 경기인 브라질전이 바로 그것이다. 볼리비아는 브라질에게 4대0으로 대패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 뒷이야기
- 오티스는 차코 전쟁 중 캐나다 스트롱기스트 전투의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4. 수상
4.1. 클럽
- 라파스 아마추어 리그 우승 8회: 1917, 1922, 1923, 1924, 1925, 1930, 1936(더 스트롱기스트)
- 라파스 아마추어 리그 준우승 2회: 1929, 1932(더 스트롱기스트)
[1]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06년과 1907년 설이 대세이다. 하지만 가장 자세하게 나온 스페인어 위키를 참고하면 이 다수설은 말이 되지 않는다.[2]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06년과 1907년 설이 대세이다. 하지만 가장 자세하게 나온 스페인어 위키를 참고하면 이 다수설은 말이 되지 않는다.[3]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4]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5] 오티스의 별명인데 번역기를 돌려보면 아무 뜻이 안 나온다. 어번 사전에 따르면 작고 땅딸막하다는 뜻의 속어라 한다.[6] 영국에만 해도 트리니티 대학교는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정확히 어떤 트리니티 대학교인지는 알 수 없다.[7] 1932년부터 1935년까지 파라과이와의 영토 분쟁. 승전국은 파라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