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트로이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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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 시절에 인기를 끈 다른 배우
2.1. 김희준
영화의 전성시대를 끝내고 드라마의 시대를 연 작품 아씨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다.
2.2. 양정화
파일:75.1.1 양정화.jpg
1세대 트로이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박동명 사건의 여파로 정상을 놓친 비운의 여배우
이 문서의 제목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이지만 이 시기의 최고 인기 여배우는 양정화였다. 지금 봤을 때에는 너무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입체적인 얼굴형과 큼직한 눈망울을 가졌지만 당시에는 이런 외모가 인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트로이카 이후 최고 미녀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드라마에서 김자옥과 더불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양정화[3]는 흑녀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잠재력을 보여줘 1세대 트로이카 이후의 최고 배우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박동명 사건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인기는 이후 정윤희와 장미희가 가져가게 되었다.
1세대 트로이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박동명 사건의 여파로 정상을 놓친 비운의 여배우
이 문서의 제목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이지만 이 시기의 최고 인기 여배우는 양정화였다. 지금 봤을 때에는 너무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입체적인 얼굴형과 큼직한 눈망울을 가졌지만 당시에는 이런 외모가 인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트로이카 이후 최고 미녀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드라마에서 김자옥과 더불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양정화[3]는 흑녀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잠재력을 보여줘 1세대 트로이카 이후의 최고 배우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박동명 사건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인기는 이후 정윤희와 장미희가 가져가게 되었다.
2.3. 임예진
[1]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질 영화 양산과 무분별한 합작 영화 범람으로 영화계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TV 보급률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영화보다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안방극장 트로이카도 이런 연유로 생겨났다. 이들이 나타났을 당시 영화계는 1세대 트로이카가 붕괴하고 여배우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릴 만큼 뚜렷한 인기를 유지한 여배우는 없었다.[2] 1969년에 절정을 이룬 1인당 영화 관람 수는 이후 무려 1년에 13%씩이나 빠져나갔다.[3] 물론 외모까지 갖춘 양정화였기에 김자옥도 양정화에게는 한 수 접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