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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파일:external/s.wsj.net/OB-RG749_jrt_ro_G_20120106034226.jpg
뒷줄: 마코 내친왕, 아이코 내친왕, 카코 내친왕
앞줄: 마사코 황후, 나루히토 덴노, 아키히토 상황, 미치코 상황후, 후미히토 친왕, 히사히토 친왕, 키코 친왕비
현재 일본 황실의 심각한 남성 부족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편의상 다이쇼 덴노의 자녀와 쇼와 덴노의 자녀도 함께 표기했다. 아래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여성 황족도 결혼하여 미야케(宮家)[1]를 창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계속 황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신적강하 때 평민이 된 구 미야케(궁호)를 다시 복권시키자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와 관련한 사항은 일본 황실 항목 참조.
노란색은 천황을 나타낸다. 현재 생존한 황위 계승권자는 주황색으로 나타냈다.
뒷줄: 마코 내친왕, 아이코 내친왕, 카코 내친왕
앞줄: 마사코 황후, 나루히토 덴노, 아키히토 상황, 미치코 상황후, 후미히토 친왕, 히사히토 친왕, 키코 친왕비
현재 일본 황실의 심각한 남성 부족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편의상 다이쇼 덴노의 자녀와 쇼와 덴노의 자녀도 함께 표기했다. 아래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여성 황족도 결혼하여 미야케(宮家)[1]를 창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계속 황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신적강하 때 평민이 된 구 미야케(궁호)를 다시 복권시키자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와 관련한 사항은 일본 황실 항목 참조.
노란색은 천황을 나타낸다. 현재 생존한 황위 계승권자는 주황색으로 나타냈다.
2. 다이쇼 덴노의 자녀[편집]
이름 | 하루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明宮嘉仁親王) → 다이쇼 덴노(大正天皇) 1879.8.31 ~ 1926.12.25 | |||||
아내 | 쿠죠 사다코(九條節子) → 데이메이 황후(貞明皇后) 1884.6.25 ~ 1951.5.17 | |||||
자녀 | 1남 | 이름 | ||||
2남 | 이름 |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秩父宮雍仁親王) 1902.6.25 ~ 1953.1.4 | ||||
아내 | ||||||
3남 | 이름 |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高松宮宣仁親王) 1905.1.3 ~ 1987.2.3 | ||||
아내 | ||||||
4남 | 이름 |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 [2] 1915.12.2 ~ 2016.10.27. | ||||
아내 | ||||||
자녀 | 1녀 | 이름 | ||||
남편 | 고노에 다다테루(近衞忠煇)[4] 1939.5.8 ~ 현재 | |||||
1남 | 이름 | |||||
아내 | ||||||
자녀 | 1녀 | |||||
2녀 | 요코 여왕(瑤子女王) 1983.10.25 ~ 현재 | |||||
2남 | 이름 |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桂宮宜仁親王)[8] 1948.2.11 ~ 2014.6.8 | ||||
2녀 | 이름 | |||||
남편 | 센 소시츠(千宗室) 1956 ~ 현재 | |||||
3남 | 이름 | |||||
아내 | ||||||
자녀 | 1녀 | 쓰구코 여왕(承子女王) 1986.3.8 ~ 현재 | ||||
2녀 | ||||||
3녀 | ||||||
다이쇼 덴노의 아들 4명과 그 후손들을 살펴보면, 장남 쇼와 덴노와 그 후손을 제외하고 현재 생존한 왕위계승권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는데 토모히토 친왕이 2012년 6월 6일 암으로 사망했고,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독신인 채 사망하면서, 아키히토 덴노의 숙부인 미카사노미야 만 남았다.
게다가 노령의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경우, 3남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을 보낸 지 10년 만에 장남 토모히토 친왕을 자신보다 먼저 보낸 충격으로 입원, 결국 타계하였다. 설상가상으로 2년만에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떠나버렸다. 또 2년 뒤에 다카히토 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승권자는 4명밖에 안 남았다.
3. 쇼와 덴노의 자녀[편집]
이름 | 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친왕(迪宮裕仁親王) → 쇼와 덴노(昭和天皇) 1901.4.29 ~ 1989.1.7 | |||||
아내 | ||||||
자녀 | 1녀 | 이름 | ||||
남편 | 모리히로 왕(盛厚王) → 히가시쿠니 모리히로(東久邇盛厚)[12] 1917.5.6 ~ 1969.2.1 | |||||
2녀 | 이름 | 히사노미야 사치코 내친왕(久宮祐子內親王) 1927.9.10 ~ 1928.3.8 | ||||
3녀 | 이름 | 다카노미야 카즈코 내친왕(孝宮和子內親王) → 다카쓰카사 가즈코(鷹司和子) 1929.9.30 ~ 1989.5.26 | ||||
남편 | 다카쓰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 1923.8.26 ~ 1966.1.27 | |||||
4녀 | 이름 | 요리노미야 아츠코 내친왕(順宮厚子內親王) → 이케다 아츠코(池田厚子) 1931.3.7 ~ 현재 | ||||
남편 |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 1926.10.21 ~ 2012.7.21 | |||||
1남 | 이름 |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繼宮明仁親王) → 아키히토 상황(明仁上皇) 1933.12.23 ~ 현재 | ||||
아내 | ||||||
자녀 | 1남 | 이름 | ||||
아내 | ||||||
자녀 | 1녀 |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敬宮愛子內親王) 2001.12.1 ~ 현재 | ||||
2남 | 이름 |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秋篠宮文仁親王) 1965.11.30 ~ 현재 | ||||
아내 | ||||||
자녀 | 1녀 | 마코 내친왕(眞子內親王) 1991.10.23 ~ 현재 | ||||
2녀 | 카코 내친왕(佳子內親王) 1994.12.29 ~ 현재 | |||||
1남 | 히사히토 친왕(悠仁親王) 2006.9.6 ~ 현재 | |||||
1녀 | 이름 | |||||
남편 | 구로다 요시키(黒田慶樹) 1965.4.17 ~ 현재 | |||||
2남 | 이름 |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常陸宮正仁親王) 1935.11.28 ~ 현재 | ||||
아내 | ||||||
5녀 | 이름 | |||||
남편 |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 1934.3.29 ~ 현재 | |||||
4. 관련 문서[편집]
[1] 황족 가문[2] 2016년 10월 27일 타계할 당시까지 남성 황족 중 최연장자였다. 참고로 이 사람은 2004년 NHK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3] 현재 103세로, 생존한 여성 황족 중 최연장자.[4] 일본의 막장 정치인 고노에 후미마로의 외손자.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의 친동생. 본래 이름은 호소카와 모리테루(細川護煇)였으나 외가인 고노에 가문에 양자로 가면서 개명.[5] 암투병 중 2012년 6월 6일 66세를 일기로 사망.[6] 전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녀이며, 전 일본 총리 아소 다로의 여동생이다.[7]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미술사)이다.[8] 1988년 만 40세가 되면서 독신으로 가츠라노미야 궁가를 창시했으나, 그해 5월 쓰러진 이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았다. 말년에는 형 토모히토 친왕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잃기까지 했다. 보통 결혼을 하면서 궁가를 창시하는 게 통례임에도 독신인 상태에서 궁가를 창시하게 된 까닭으로, 여종을 건드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다(…). 설령 숨겨 놓은 아들이 있다고 해도 현행 황실전범에서는 서자의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으니 큰 의미는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냐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다카히토 친왕의 아들 3명이 모두 아들을 못 낳고 아버지보다 먼저 가버려서 미카사노미야 궁가의 단절이 확정되었다.[9] 2002 한일 월드컵 때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부산광역시에 왔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일본 황족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 사례라 양국에서 화제였다. 개방적인 성격에다가 사진과 스포츠에 조예가 있어서 평판이 좋았으나, 주일캐나다대사관에서 스쿼시를 하던 도중 만 47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10] 2014년 5월 27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의 신관인 15살 연상의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와 약혼을 발표, 동년 10월 5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왕족에서 제외되었으며,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었다.[11] 2018년 10월 29일,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다.[12]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로 첫 일본 총리를 역임한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의 장남. 메이지 덴노의 외손자이기도 하다.